[경제인과 톡톡] 조용범 경남건축사회 회장

"<응답하라 1988>에 많은 사람이 열광했는데요. 드라마 속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건축물이 살기는 좀 편해지고, 그만큼 단열이나 기밀성능은 좋아져 더 따뜻해지고 더 시원해졌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인간적인 정을 느끼던 그 공간들, 골목, 도시가 갖고 있던 특수한 이야기들이 없어져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창원, 부산, 진주, 어디를 가도 똑같은 도시 형태, 똑같은 건축물이죠. 이런 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결과물이라면, 이제 인간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도시 전문가나 건축 전문가 역할이라고 봅니다."

경남건축사회 조용범(54) 회장의 이야기다. "결국 건축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삶과 철학을 소개한다.

◇첫 건축 스터디그룹을 만들다 = 대목이었던 할아버지 피를 물려받은 그는 경남대 건축공학과에 들어갔지만, 대학시절은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는 80학번인데, 건축과는 1979년에 생겼다. 건축 전공 교수는 1명뿐이었다. 2학년 1학기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84년 복학하면서 건축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부산, 대구, 서울 쪽에 있는 다른 대학 건축과와 교류하면서 함께 공부했다.

스터디그룹 이름은 '스케일 건축연구회'. 84년에 만들어져 2014년 창립 30주년 행사까지 열 정도로 전통 있는 모임이 됐다. 학년마다 5명 안팎으로 열정 있는 학생들이 모여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을 열고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면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건축 전문성 높여야 = 1987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 그는 마산에 있는 원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선배가 맡은 프로젝트, 건축사가 진행하는 다양한 작업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기본 설계부터 실시설계, 인허가 업무, 감리, 준공까지 여러 실무를 익힐 수 있었다.

93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94년 1월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딴 '범건축' 사무소를 열면서 독립했다. 그해 가을 10월에는 결혼도 했다. "가장 어려운 게 실무와 함께 공부도 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가정도 꾸려야 했죠. 국가고시가 어려워 전체 응시자 중 합격률이 9% 정도였어요. 굉장히 어렵게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병행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조용범 경남건축사회 회장이 건축과 관련한 그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실무에서 처음 맡은 일이 병원 건축이었다. "원건축에서 병원 일을 담당하게 됐죠. 마산 석전동에 있는 이동식 정형외과인데, 스태프로 참여해 실시설계를 처음 맡았죠. 작은 로컬병원이었는데, 그걸 계기로 병원 설계를 많이 했습니다. 병원이라는 건축물은 특수성이 있거든요.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다 지어진 건물을 둘러보러 오기도 했고, 의료계 원장님들을 통해 몇 개 프로젝트를 더 했습니다."

병원 건축을 주로 하면서 건축사도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축에 관한 소신이다. "한 건축사가 공장, 주택, 사무실, 학교, 공연시설, 의료시설, 종교시설 등 어떤 건물이든 사실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 중 특화할 것이 있고, 전문성을 갖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서로 과잉 경쟁하지 않고, 함께 먹고살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아파트 등은 잘 모르지만, 아파트 설계 의뢰가 들어오면 그걸 놓치기 싫어서 욕심을 낼 수가 있고, 사실 그러면 전문성이 좀 떨어지게 되죠."

◇건축 현안 진단 = 조 회장은 지난해 4월 취임했다. 그가 건축사회 안팎으로 제기했던 건축 현안들을 짚어봤다. "우선 설계·감리 용역비 현실화와 관련된 건축법 일부 개정안이 올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동안 건축주가 직접 시공해온 소규모 건축물에도 감리자를 건축 허가권자가 지정할 수 있도록 했죠. 건축물 부실이나 안전사고 문제가 설계만이 아니라 감리 부실에서도 발생한다고 인식했기에 이 같은 법 개정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이 입법도 무려 3년 이상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조 회장은 건축사 업무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근대화와 갑작스러운 개발 시대를 벗어나는 단계입니다. 주택이나 건축물 보급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고, 앞으로는 기존 뼈대에 안전 문제만 없다면, 내부 기능들이 현대 패러다임에 맞게 차츰 변해가야 합니다. 건축물 리모델링, 유지관리에 건축사들의 미래 먹거리가 있지요."

특히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은 화재, 피난 등 안전에 관한 문제를 꼼꼼히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내부 장식 요소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소방설비, 전기 등과 같이 인테리어 안에 숨어 우리가 지나쳤던 부분들이 이제는 자격이 있는 건축사의 고유 업무로 전환돼야 할 것입니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도 이 내용을 법제화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죠. 건축사들이 인테리어 부문을 터부시해오기도 했는데,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바꿔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경남건축사회는 지난해 윤리위원회를 열어 9개월 회원 권리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편법으로 사무소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전국 시·도 건축사회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조 회장을 비롯한 경남건축사회 집행부는 불법·탈법·위법 사무소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경남에서부터 이런 흐름이 확산해 다른 시·도에서도 관련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내가 살아갈 도시와 지역을 위해 관심과 참여를" = 회장으로서 남은 임기는 2년이다. 조 회장은 도건축사회의 사회적 역할 강화, 회원 권익 신장에 주력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산하에는 연구원이 있는데, 시·도 건축사회에는 아직 한 군데도 없습니다. 경남건축문화연구원을 설립해 건설 동향을 파악하고, 다양한 조사와 연구로 지역균형발전을 유도하는 정책 개발 자료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것을 행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요. 건축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해 사회적 역할 강화에 힘썼으면 합니다."

도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봤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조심스럽지만, 꼭 필요한 얘기"라며 말을 이어갔다. "경상남도는 도민이 주인입니다. 시·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와 건축에 국한해 말씀을 드리자면, 내가 살아갈 이 도시와 지역은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논리로 경남이나 시·군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와 건축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경남에 시·군별로 18개 지역건축사회가 있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은 우리가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의견을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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