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기술로 위용 드러낸 '주탑'…상판 내년 초 설치, 노량해전 역사성 교량에 반영하기도

남해대교에 이어 남해와 하동을 연결하는 제2남해대교 위용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노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해군과 하동군 양쪽에 각각 세워지는 주탑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거대한 주탑이 온전한 모습을 갖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완공까지는 케이블 가설과 상판 공사 등 핵심적인 공사가 아직 남아 있지만 순조롭게 추진되면 2018년 6월께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 현황 = 제2남해대교 건설공사는 남해군 고현면∼하동IC 구간을 연결하는 국도 19호선 국도건설공사 총 4개 구간 중 2공구에 해당한다.

이 구간은 GS건설이 공사를 맡고 있으며 사업 대상지는 남해군 설천면 덕신마을에서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까지 총연장 3.1㎞다. 여기에 제2남해대교, 소교량 4개소, 노량터널, 입체교차로 3개소 등이 건설된다. 총사업비 2469억 원 중 지난해까지 1113억 원이 투입됐다.

가장 핵심적인 사업인 제2남해대교 건설 공사는 지난 2009년 공사에 들어간 이후 현재까지 현수교 교량 핵심시설인 케이블 하중을 지지하는 앵커리지와 주탑 공사가 진행됐다. 제2남해대교 전체길이는 990m로 기존 남해대교(660m)보다 330m가 더 길다. 2개 주탑은 높이만 148.5m에 이른다.

남해군 설천면과 하동군 금남면을 연결하는 제2남해대교 건설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양쪽 지역에 교량 주탑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허귀용 기자

앵커리지와 주탑 공사는 남해 쪽보다 하동 쪽이 빠르다. 하동 쪽은 거의 마무리 공정에 다다랐다. 남해 쪽은 인근 마을과 인접한 탓에 각종 민원 발생으로 공사가 지연됐다. 앵커리지와 주탑 공사는 올해 4월께 모두 마무리될 계획이다.

앵커리지와 주탑 공사가 끝나면 상반기 안에 교량 하중을 지지하는 핵심적인 시설인 케이블 가설 공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이 케이블 길이만 1만 672㎞로 서울과 부산을 13번 왕복하는 거리와 비슷하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교 상판 설치공사는 이르면 내년 초께 시작될 것으로 GS건설 측은 전망하고 있다.

GS건설 김형운 현수교팀장은 "제2남해대교 주변은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상판 설계도 내풍 안정성에 중점을 둬 각 상판 블록 외측은 삼각형에 가까운 유선형으로 제작하고 있고, 상판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길이로 제작한 53개 상판 블록이 제2남해대교에 설치된다"고 설명했다.

◇첨단 공법 기술 접목 = 제2남해대교는 주탑이 해상에 자리 잡은 남해대교와 달리 모두 육상에 지어져 교량 건설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상오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또한 경사주탑을 설계에 반영해 주 기둥 사이와 측 기둥 사이 케이블이 버티는 하중을 고르게 분산시켜 앵커리지 규모는 축소하고 교량의 구조적 안정성을 보강했다.

그리고 주탑 사이 교량부에 연결되는 주케이블 모양이 주탑에서는 좁았다 중앙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3차원으로 배치됐다. 교량 위에서 보면 주케이블 선형이 럭비공처럼 타원형을 띠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공법으로 주케이블과 상판을 연결하는 행어케이블이 삼각형 모양으로 보여 교량 경관미를 높이고 바람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해 교량 안정성을 더욱 높였다.

이처럼 제2남해대교는 3차원 케이블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타정식 현수교인데다 경사주탑도 세계에서 처음으로 현수교에 도입돼 학계는 물론 건설업계의 건설 현장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세계적인 권위의 영국 교량전문저널 〈브리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학익진' 설계에 반영 = 또 다른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 진법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학익진'과 활의 원리가 설계에 반영됐다는 점이다.

제2남해대교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를 벌인 노량해전지 일대로 그 역사성을 교량에 일부 담은 것.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경사주탑 속에 숨어 있다. 노량해협 남북 양쪽에 있는 주탑은 8도가량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경사주탑 상단에 학익진의 모양을 딴 형상물이 만들어진다.

김 팀장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 진법인 '학익진'을 모티브로 학 모형을 경사주탑 상단에 형상물을 만들어 표현했고, 당시 왜군에 밀려 백척간두에 서 있던 조선을 지켜낸 활의 원리를 건축공학적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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