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지역 중·고생 30여 명으로 구성, 일상 이야기에서 불합리한 현실까지 '기자정신'으로 당차게 고발

◇1998년 시작된 <필통> = 한 달에 한 번 경남도민일보 20면에 청소년들의 글이 한 편씩 실립니다. 진주에 있는 <필통>이라는 청소년신문 기자들의 것입니다. 이 신문은 대표와 이사 등 일부를 빼면 모든 구성원이 학생입니다. 필통의 정식 명칭은 '비영리사단법인 청소년문화공동체 필통'입니다. 지난 1998년 '청소년신문 필통'으로 시작해 재정 문제로 잠시 휴간을 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는 역사가 오랜 신문입니다.

신문은 매달 타블로이드판(일반 신문의 절반 크기)으로 24면을 발행합니다. 고3을 제외한 청소년 기자들이 3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은 주로 주변 일상이나 인물을 전하는 기사를 많이 쓰지만 더러 자기만의 시선으로 당차고 재밌는 기사를 쓰는 친구들이 보입니다. 예컨대 이런 글들입니다.

"시험 성적 공개, 수치심 느껴요! 시험 성적과 순위 교내 공개, 과연 필요한가?"

"대입 자기소개서가 '자소설'이 되는 불편한 진실, 내신과 수능 공부도 부족한 시간… 소설이 되는 자기소개서"

"초겨울인데 '마이'만?… 교내에서 외투 입을 수 없어…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학교 내에서의 외투 착용 규제"

"진주 외곽지역 부족한 시내버스, 등하교 힘들다. 학생들 등하교,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추가 배차를"

"불편한 진실, 버스 탈 때 학생이요 외치는 이유…시내버스 청소년 교통카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방학에도 학교에 꼭 가야 하나요? 학생들을 학교에 묶어두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다"

지난 23일 '2016년 필통기자학교' 수료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청소년 기자.

보시다시피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어른들이 제시한 시선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불이익이 없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언젠가 한 번 이 청소년 기자들을 만나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기회가 왔습니다.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2016 필통기자학교'가 진행됐습니다. 올해 새로 뽑은 신입(중3, 고1)을 포함해 필통 기자들(고1, 고2, 고3) 모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23일 수료식 자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필통 사무실이 있지만, 자리가 좁아 수료식은 중안동 진주우체국 건너편 모퉁이 건물 3층에서 진행됐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이고, 어수선하고 떠들썩합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낯선 아저씨를 보고 '누구지' 하면서도 친절한 웃음을 보냅니다.

과제를 발표하고 있는 청소년 기자.

◇'100자 기사 써오기' 특명 = 기자학교에서 5일간 열심히 공부를 한 청소년 기자들은 수료식 전 마지막 실습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밖으로 나가 한 시간 동안 사진과 함께 100자 기사를 써오는 것입니다. 주제는 '행복' 또는 '정의'입니다. 대부분 아이가 행복이란 주제를 택했더군요. 한 친구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한 아주머니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기사 제목은 '매일 가게 앞을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평거동 옛날 통닭집 앞에는 일주일이 넘게 매일 찾아오는 비둘기 손님이 있다.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날이 추워 먹이를 구하는 비둘기들이 불쌍해서 튀김 옷을 주셨는데 그 후로 비둘기 10마리 정도가 매일 찾아온다고 한다. 흔히 지능이 낮은 동물로 알려진 비둘기가 그 위치를 기억하고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온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유해동물로 알려진 비둘기지만 추운 겨울 모든 생명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비둘기들에게도 전해진 듯하다."

한 시간 만에 작성한 사진과 글 치곤 제법 주제를 잘 잡아냈습니다.

이런 글도 있습니다.

"제목은 'H 매장의 마 씨를 아시나요?'입니다. 마 씨는 H 매장에서 일한다. 한평생을 그곳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곳에 갇혀 삶의 한평생을 보내는 것이 지겹고 가끔은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입은 옷을 보고 사람들이 매장으로 들어와 옷을 살 때의 행복감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며 그 행복으로 계속 일할 것이라 말했다."

의류매장의 마네킹을 소재로 행복이란 주제를 풀어냈습니다. 시각이 독특합니다.

과제 발표가 끝나자 기자학교 수료증과 기자증 수여식이 이어집니다. 신입 기자들은 정식으로 기자가 되고 2년 차들은 선배 기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현재 신입들은 중학교 3학년들이 대부분인데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됩니다. 신입 기자가 주로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과 비교해 선배들은 마감시간 잘 지키겠다, 연락 잘하겠다고 하는 등 제법 기자 티가 나는 소감을 말합니다.

수료증을 받은 청소년 기자.

◇비판·기자정신 함께 키워 = 수료식을 마치고 치킨·피자와 함께한 뒤풀이 자리에 같이 끼어 앉았습니다.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습니다. 당돌한 기사, 이를테면 학교 규칙이나 지시사항을 반박하는 내용의 기사를 쓰게 되면 불이익 같은 게 없느냐고 말입니다. 필통은 매달 1만 부 정도를 찍어 진주지역 42개 중고등학교에 배포합니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들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게 되는 거지요.

놀랍게도 아이들은 실제로 교무실이나 교장실로 불려갈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담임이나 교장 선생님에게서 직·간접적으로 혼나거나 주의를 받기도 하고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일에도 굴하지 않고 기사를 계속 쓴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이 저한테 그 기사 별로야, 라고 하면 저는 별로 아닌데요, 라고 대꾸하죠."

물론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그렇게 억압적으로 교육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학생들에게 '비판'은 쉽지 않은 일일 듯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물론 학생들이 힘들죠. 하지만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어요. 필통이란 신문이 제법 역사도 있고 인지도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불러서 나무라더라도 그걸로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기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필통 이혁(45)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필통 기자들이 비판정신뿐만 아니라 나름의 기자정신까지 갖춘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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