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포5통 주민들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 "함께 이야기 좀 합시다"…부영 "확정된 것 없다" 답변 회피

가난에 떠밀려 도심 산기슭에 터 잡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무허가촌 주민들. 수십 년째 불어오는 개발 바람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지만 주민은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애써왔다. 긴 세월 치열했던 몸부림은 '주민대책위원회'와 '가포과수농리조합'이라는 결실을 내기도 했다.

◇주민이 기댈 언덕 = 가포5통 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소유권 분쟁에 대비해 마을을 지키자는 생각이 출발이었다.

대책위는 마을에서 각종 분쟁이 있을 때마다 최전방에 나섰다. 옛 소유주인 한마학원에 찾아가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고 1996년 가포5통 1반 땅 일부가 개인에게 팔려 논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주도적으로 소송을 진행했다. 지자체에 민원을 내거나 터 소유권과 관련한 내용증명을 만들어 보관하는 일도 도맡았다. 2009년에는 마을 입구에 컨테이너를 설치, 사무실로 운영하며 주민과 소통하기도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부영아파트 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가포5통 주민. /이창언 기자

현재 대책위는 위원장·총무를 포함해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들은 주민을 대표해 마을 현안을 논의·결정한다.

주민 요구사항을 수집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비록 모임 횟수가 예전보다 덜해졌으나 주민 처지에서는 여전히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기둥이다.

주민대책위 관계자는 "㈜부영에서 터를 사들이면서 각종 개발 계획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 탓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도 '혹시 벌어질지 모를 최악의 상황'은 늘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포과수농리조합(이하 조합)도 마을의 든든한 파수꾼이다. 마을 뒷산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가구가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조합은 28년째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26가구가 가입해 있다.

해마다 조합은 복숭아농사에 필요한 퇴비·포장 상자 대금 지원을 받는 데 앞장서고 있다. 기술·설비 지원은 꿈도 못 꾸는 남의 땅에서 '아직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준 셈이다. 창원시농업기술센터에 '복숭아작목반'을 등록한 일도 조합 작품이다. 이 덕분에 주민은 농사·기술 정보를 얻고 교육도 받고 있다.

저마다 방식으로 마을을 지켜오던 대책위와 조합은 최근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괜한 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 섣불리 행동하진 않지만 '한 가지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대화가 필요하다. 부영과 논의가 있어야 해결방안도 나온다'.

주민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무허가 인생은 없다 = 지난 2013년 2월 부영은 가포5통 무허가촌에 개발 계획과 보상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옛 한국철강 터 정화작업 문제로 업무가 바쁘다 보니 본사는 물론 경남영업본부에서도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8월쯤이면 주민과 만나 보상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해 논의는 없었다.

지난해 부영은 월영동 부영아파트 건설과 관련한 주민설명회를 두 차례 연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가포5통 주민도 일부 참석했다. 하지만 가포5통과 뒷산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가포순환로 확장과 관련한 이야기가 넌지시 나왔으나 '몇 가구쯤 포함된다, 공사는 언제쯤 시작할 예정이다'가 전부였다.

올해도 부영 입장은 같다. 부영 관계자는 "본사에서 가포5통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확정된 건 없다. 보상도 마찬가지"라고 못 박았다. 당장 3월 가포순환로 확장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나 '주민'은 여전히 빠져있다. 부영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도시계획사업으로 가포순환로 확장 인가를 받았으나 지장물 몇 개가 빠져 현재 변경인가가 심의 중이다. 창원시 승인이 먼저다"는 말만 반복했다.

법에 명시돼 있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건 결국 시행자 의지다. 시행자가 먼저 움직인다면 주민은 언제든지 답할 준비가 돼 있다. 그 대화가 헛되지 않도록 착실히 살아왔다.

대책위 관계자는 "여전히 '이곳에도 삶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인생은 무허가가 아니다. 우리와 함께 이야기해달라"고 호소했다.

비단 가포5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선 오래전부터 이 같은 기다림이 있었다. 약한 자가 물러나야 하는 뻔한 결과라도 살기 위한 몸부림은 반복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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