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8) 진주 집현면 토마토 농사 시작한 김규오 씨

귀농보다는 고향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더 맞겠다. 농장이 가족이 생활하는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여느 직장인이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서 농장으로 출근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다 지난해 독립한 김규오(41) 씨. 현대식 시설하우스에는 토마토 줄기가 힘차게 뻗어오르고 있다.

비정규직 삶이었던 20∼30대

지난 2002년 경상대학교를 졸업한 규오 씨는 사회 첫 출발이 순탄하지 않았다. 임산공학을 전공한 규오 씨는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졸업하고 서울에서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사실은 졸업도 하기 전 서울로 갔습니다. 1년 정도 학원에 다녔는데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습니다. 하고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내 능력이 모자라는 것 같아 실패했습니다. 결국 이듬해 되돌아왔죠. 이후 '좌절모드'라고 할까요? 한동안 방에 처박혀 두문불출했습니다."

그러나 마냥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는 해야겠고, 궁리를 하다 내 사업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이템은 식당이었다.

"일을 하려니 식당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식당을 차리려면 요리사자격증 등이 필요할 것 같았죠. 2005년 진주산업대(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식품가공학과에 입학해 다니면서 학원도 등록해 요리사 자격증 공부를 했습니다. 한 1년 다녔는데 뜬금없이 주위 아는 분이 농협에 추천해 줘 엉겁결에 비정규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규오 씨는 2007년 1월부터 농협에서 2년 6개월 정도 일을 했단다. 처음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기회가 올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2009년 10월 결혼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농협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돼 하마터면 결혼도 못할 뻔했죠. 지금도 아내가 고마운 게 실업자인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더군요."

결혼 이후에도 일자리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이는 들어가고 비정규직 생활이 반복됐다. 그래서 다시 식당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다 지난해 독립해 따로 토마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김규오(왼쪽) 씨. 그의 가장 든든한 멘토는 바로 나란히 선 아버지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아내와 의논해 식당을 열려고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가 모은 돈이 제법 있었고, 부족한 부분은 대출하기로 마음먹고 계약금을 걸었죠. 그런데 막상 식당을 열려니 겁이 났습니다. 임대료에 시설비까지 몇억을 들여야 하는데 당시 뉴스는 온통 '자영업 실패'라는 것밖에 안보이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식당을 계약한 사실을 안 아버지께서 식당보다 당신 밑에서 차라리 농사를 배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아내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요."

아버지 곁에서 농사를 거들기 시작한 규오 씨는 진주시가 운영하는 농업인대학에 등록해 열심히 배웠다. 1년 가까이 다니면서 참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강소농교육도 신청했는데 교육받으면서 우리 농업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지금도 진주시 강소농연합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기수별 모임인 자율학습체모임을 통해 사람도 많이 알게 됐고, 요즘도 그분들 도움을 받고 있단다.

열심히 익힌 끝에 농장 독립

"작년 11월 24일은 저에게 역사적인 날입니다. 토마토 모종을 하우스에 옮겨 심은 날이죠. 남들처럼 9~10월에 심어야 했는데 저는 11월 말에 모종을 옮겼으니 한참 늦은 셈입니다."

규오 씨는 처음으로 자신의 농사를 시작했다. 아버지 땅이 있었기에 땅 구입문제는 해결했고, 정부로부터 후계농업경영인 정책자금 융자 등 2억 5000만 원으로 시설하우스를 마련했다. "전체 3300㎡에 시설하우스는 2400㎡(740평) 정도 됩니다. 규모는 작지만 저에겐 의미 있는 농장입니다. 아직 재배기술 등이 부족하니 규모보다는 시설 쪽에 신경을 썼습니다. 2월 말이나 3월 초부터 수확해 6월 말이나 7월 초까지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처음 시작한 농사라 어설프기 짝이 없어 보인다. 작목선택은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가 여러 가지 농사를 짓지만 작은 시설하우스 한 동에 토마토도 길렀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가꿔본 토마토가 쉽지 않겠나 싶어 선택했습니다."

규오 씨는 평당 50~60㎏ 수확을 목표로 한다. 일반 시설채소는 평당 10만 원 정도의 수익을 보는데 시설 투자가 많은 만큼 15만 원 정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출은 1억 1000만∼1억 2000만 원 정도. 여기에서 감가상각비와 연료비, 운영비, 기타 비용 등을 뺀 순수익은 4000만~5000만 원 정도로 기대한다.

토마토 농사를 시작한 김규오 씨.

"아버지 위한 체험농장 열 것"

규오 씨 이야기를 듣자니 토마토 농장은 그가 혼자 만든 작품이 아니었다. 규오 씨의 가장 든든한 멘토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고, 아내는 천군만마와 같은 지원군이었다. 아버지와 아내에 대한 마음은 인터뷰 내내 묻어 나왔다.

사무실 겸 휴식공간으로 사용하는 시설하우스 입구가 족히 20평은 돼 보인다. 규오 씨는 독특한 생각을 했다. "이 공간이 사실 아깝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팜 카페'를 열 계획입니다. 돈을 받고 음료수를 파는 카페가 아니라 아버지나 농사를 짓는 동네 사람들이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휴식도 취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를 여는 것이죠." 아주 멋진 아이디어였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70대인 당신은 요즘도 30여 가지 작물을 재배하는데 이젠 농사 규모도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을 체험농장으로 꾸며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체험농장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생각하는 것이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누구보다 큰 지원군인 아버지.

규오 씨는 아내에게도 또 고마움을 전한다. "고모님 소개로 선을 보고서 2년 넘게 연애를 하다 결혼했습니다. 연애 시절부터 결혼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끝까지 저에게 용기를 준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큰 힘이 돼 준 것이 아내와 두 아이입니다. 지금도 가족만 생각하면 힘이 불끈 솟습니다. 너무 고마운 일이죠."

그랬을 것 같았다. 순간 규오 씨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무기력해 보였던 규오 씨와 결혼한 진짜 이유를 아내에게 물어봤는지. "아뇨. 겁이 나서 지금까지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왜 나랑 결혼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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