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자 발언대를 읽고

"노회찬은 노원을 지키고, 허성무는 창원을 지켜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자. 야권 단일화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에 아주 기뻤다. 야권의 분열로 선거에서 패하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이기고 싶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같은 시대를 사는 한 청년이 발언대에 투고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 글을 읽으며 나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야권의 승리가 청년에게 어떤 희망이기에, 야권의 분열은 그대에게 그토록 절망적인가?

'우리'는 평범한 노동자, 학생, 구직자이다. 나날이 나빠지는 경제, 취업 압박으로 자살한 이웃의 소식이 놀랍지 않은 시대이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불안한 단기계약직으로 취업해 최저임금을 받아 학자금 빚을 갚고, 다달이 집세를 낸다. 이런 처지에서는 결혼·출산은 물론 홀로 살아도 안정을 찾기 힘들다. 이 마당에 정부 여당은 노동개악을 진행한다.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근로기준법 개정, 실업급여 수령액을 줄이는 고용보험법 개정, 더 오래 비정규직 하라는 기간제법 개정, 하청 파견을 더 늘리겠다는 파견법 개정. 이런 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절망적이게 될 것이 뻔하다.

야권은 그런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작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개악을 막아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선거구 획정 문제와 맞바꾸어 수용해 버렸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더 나은 처지를 약속할테니 권력을 맡겨달라고 한다. 그들을 대통령,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우리'의 운명을 맡겼다. 기간제법은 노무현 정권 시절, 당시 여당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만들어졌다. 파견법이 만들어진 것은 김대중 정권 시절이었다. 그들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비정규직, 파견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간제법은 2년마다 노동자를 자르도록 만들었고 단기계약직으로 내몰았다. 파견법은 노동자를 바지사장의 이중착취 아래로 빠뜨렸다.

더민주의 행보는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는 새누리당만큼 기만적이다. '우리'의 편임을 자처하는 진보정당조차도 승리를 위해 야권연대가 필요하다며 민주당과 한편이 되는걸 우리는 봐왔다. 정치인들에게 내맡겨놓은 의회 정치는 '우리'의 삶을 절망으로 내몰았다. 그대에게 다시 묻자. '야권'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의 승리인가? 노회찬, 허성무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가 아님을 과거는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야권의 분열은 청년 그대에게 왜 절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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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해 운명을 결정지었던 경험이 있다. 1987년의 '우리'들은 노동권 보장과, 임금인상, 독재타도의 열망으로 거리를 꽉 채웠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렸고 확대된 노동권을 얻어냈다. 2016년을 사는 '우리'의 승리도 의회가 아니라 거리를 가득 메운 목소리로 이뤄낼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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