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피어난 연꽃시대의 지성으로 지다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 연루 20대 후반부터 20년간 복역…꺾을 수 없었던 사회변혁 의지 책으로 엮어 삶의 방향 제시해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감옥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돌베개, 1998 증보판)

지난 15일 별세한 신영복 선생의 삶은 20년 감옥생활로 대표할 수 있다. 선생의 홈페이지(www.shinyoungbok.pe.kr)에 있는 그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1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차려진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영결식은 18일 오전 11시 엄수된다. /연합뉴스

194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밀양에서 자랐다. 부산상고 졸업 후 1963∼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5∼1966년 숙명여대 정경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1966∼1968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988년 8월 15일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20년 20일을 복역했다. 1998년 사면복권 후부터 지금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해왔다.

20대 후반에 감옥 생활을 시작한 신영복 선생은 체계적인 독서를 하면서 특히 동양고전에 심취했고, 목공, 재단 등 노역을 포함한 감옥 생활 자체를 통해 역사나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그 과정과 결과를 엽서와 편지로 묶어 지난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으로 냈다. 이 책을 통해 선생은 20년 감옥 생활로도 꺾이지 않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태도와 사회 변혁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리하여 감옥에 갇힌 엘리트 청년은 20년이 지나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1998),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 <처음처럼>(2007) 등이 출판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선생을 삶의 멘토로 삼았다.

지난 2014년 피부암 진단을 받은 선생은 최근 암이 다른 장기로 빠르게 전이되면서 병세가 악화했고 지난 15일 오후 10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빈소는 성공회대 성당에 차려졌고, 장례는 18일 성공회대학교장으로 진행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