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먹일 미역 한 줌 건져 돌아오며 잘되라 기원하던 어머니의 길

남해에 있는 바래길 이야기를 들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10월에 작고한 남해해오름예술촌 촌장 불이 정금호 선생에 대해 취재를 하려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문찬일(58) 씨를 만났다. 문 씨는 힘든 젊은 시절에 불이 선생을 만나 새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이 선생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그때 남해섬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해가 제주나 지리산보다 못한 게 뭐 있노?"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남해바래길이다.

◆남해바래길은 삶의 길이다

"바래가 무슨 뜻입니까?" 바래길 이야기를 듣던 날 문찬일 씨에게 물었다.

"남해 아낙들이 물때만 바뀌면 바닷가에 나가서 미역 한 줄 뜯고 톳 한 줄기 뜯고 조개 하나 캐고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바래입니다. 남해 사람들은 그걸 통해서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고 꿈을 키워줬지요. 자식 잘되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마음이 거기 담겨 있지요."

듣는 순간 느낌이 좋았다. 문 씨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바래로 생계를 유지했단 말인가요? 예컨대 해녀들의 물질처럼이요."

"그건 아니에요. 생계 수단이라기보다는 부족한 먹을거리를 보충하는 일이라고 해야겠죠. 어업과 농업이 본업이니까요."

남해바래길이 지나는 어촌 마을에서 '바래' 하는 아낙들. /문찬일

"바래가 남해에서만 쓰는 말인가요?"

"그렇죠. 어촌 마을에서는 '바래 갔다 오는가? 어 바래 갔다 오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남해 토속어라고 해야겠네요. 근처 통영에서는 '바리'라고들 하더군요."

남해 바래길 홈페이지(www.baraeroad.or.kr)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남해 바래길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온 남해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갯벌이나 갯바위 등으로 바래하러 다녔던 길입니다. 바래를 통해 채취한 해산물을 이웃과도 나누어 먹었던 나눔의 길이기도 합니다."

바래길 초기 회의 자료집에는 이런 글귀도 있다.

"(바래는) 가족을 위해 국을 끓이고, 삶아 무쳐서 반찬으로 만들고, 말려서 도시락 반찬으로도 넣어주고, 그래도 남으면 시집간 딸래미 집에 보내는, 대량 채취가 아닌 일용에 필요한 양만큼만 채취하는 작업입니다."

남해바래길을 일러 '삶의 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찬일 씨

◆남해바래길이 열리다

문 씨가 바래길을 구상하고 읍면에 다니며 적당한 길을 물색해 남해군에 제안을 한 건 지난 2009년이다. 남해군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주민토론회 등을 거친 다음 지난 2010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문화생태탐방로 신청을 했다. 걷기 열풍이 막 시작하던 시점이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적으로 걷는 길을 발굴하던 때였다. 그때 남해로 현장 실사를 온 이가 현재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문화융성지원팀장을 맡은 홍성운(56) 서기관이다. 그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과 사무관으로 남해바래길을 포함해 하동 박경리 토지길, 통영 토영이야길, 하동·산청 이순신 백의종군로, 산청 구형왕릉 가는 길 등 경남을 포함한 전국에 있는 걷는 길들의 산파 역할을 한 이다.

그는 현장 실사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변 풍광들이 매우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코스마다 특성이 있었는데 어촌 마을이라든가 섬이라든가 하고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바다에 펼쳐진 죽방이라든지 바람을 막기 위해 해놓은 방풍림이라든지 소소한 부분에서 이야깃거리들이 많았어요."

그해 5월 남해바래길은 문화체육관광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되면서 실질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 당시 문체부 방침은 민간단체가 주도해 길을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문 씨가 불이 선생과 함께 사람들을 모았고, 그해 6월 8일 '남해바래길 사람들'이 출범했다. 이들은 숨어 있던 길을 찾아 이었고, 있는 길을 넓혔고, 관광객들을 안내했다. 그리하여 2010년 11월 27일 남해바래길이 정식으로 열렸다.

◆남해바래길을 걷다

2016년 1월 현재 남해바래길은 10개 코스가 열려 있다. 구체적으로 1코스 다랭이지겟길, 2코스 앵강다숲길, 3코스 구운몽길, 4코스 섬노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 6코스 말발굽길, 7코스 고사리밭길, 8코스 동대만 진지리길, 13코스 이순신 호국길, 14코스 망운산 노을길이다. 이 중 8코스 진지리길은 길은 연결되어 있지만 이정표 등 안내 표지가 아직 없다고 한다. 애초 계획에는 이 외에도 창선바지락길, 남해갱번길, 강진만갯벌길, 대국산성길, 노량갯벌길이 더 있다.

2013년 11월에는 바래길 안내를 도와줄 바래길탐방안내센터(055-863-8778)가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들어섰다. 남해바래길 사람들과 탐방안내센터에서는 매년 가을 소풍 행사를 열고 사람들을 모아 바래길을 걷는다.

문 씨는 개인적으로 바래길 월요 탐방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문 씨가 전하는 바래길 걷기 노하우를 들어보자.

"바래길의 참모습은요, 길을 걷다 바래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노닥거리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느껴보고 남해 섬에 사는 남해인들의 고단함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데 있어요. 그래서 이정표가 없는 길도 한 번 들러보고, 길도 잃어보고 이런 게 바래길을 걷는 재미일 수 있어요."

문 씨 조언처럼 앞으로 남해바래길 코스를 하나하나씩 사부작사부작 걸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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