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지역출판사 대표 대담…'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펄북스' 여태훈 대표, '도서출판 피플파워' 김주완 출판미디어국장

지난 12일 오후 진주시 평거동 '진주문고'에서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펄북스' 여태훈 대표, '도서출판 피플파워'와 '도서출판 해딴에'를 운영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출판미디어국장이 만나 '지역 출판의 현실과 미래'를 주제로 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진주문고'는 '펄북스' 여 대표가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이곳에서 지역 출판사 대표들은 함께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 열악한 환경인 줄 알면서 다들 왜 지역에서 출판사를 열게 됐나?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이하 정) : 서울 기획회사에서 일했다. 몸이 안 좋아서 안식년에 통영을 찾았다. 안식년이 지나니 다시 서울로 가기 싫더라. (웃음) 다시 그 삶을 반복해야 하니까. 재미도 없고, 한계도 느꼈다. 책을 좋아하니까 책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는 지역에서 일거리를 줄 만한 곳이 없으니, 출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굶어 죽진 않겠지' 생각했다.

지난 12일 오후 진주시 평거동 '진주문고'에서 '남해의봄날' 정은영(왼쪽 위) 대표, '펄북스' 여태훈(맨 오른쪽) 대표, '도서출판 피플파워'와 '도서출판 해딴에'를 운영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김주완(오른쪽 위) 출판미디어국장이 '지역 출판의 현실과 미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여태훈 '펄북스' 대표(이하 여) : 개인적인 욕망이 컸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일을 30년 하니까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소설 작품 평론하는 분들이 평론 10년 하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 그것과 마찬가지다. 30년 동안 지역민이 책을 사랑해줘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여기에 대한 빚이 있다. 교회는 안 나가지만 '십일조'로 여겼다. 잘 먹고 산 데 대한 나름의 빚을 상환하는 방법이다. 인쇄, 출판문화가 지역은 거의 황폐화돼 있다. 인구 35만 진주에 제대로 된 출판사가 없다. 인쇄소를 겸한 자비출판이 전부다. 전국을 대상으로 책을 파는 일을 하고 싶었다.

△김주완 '도서출판 피플파워' 출판미디어국장(이하 김) : 우리는 조금 다르다. 신문사는 단순히 뉴스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콘텐츠를 만든다. 지역의 역사, 문화, 인물, 산, 강, 사투리, 골목, 특산물 등이 모두 지역의 콘텐츠 자산이다. 신문에 한번 실으면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끝나버리는 게 아까웠다. 콘텐츠를 만들어서 상품으로 만드는 최종 형태가 책이다. 출판사를 하기 전에 다른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낸 적이 있다. 상업성이 있는 콘텐츠는 책을 내주지만, 지역성이 강한 출판물은 책을 안 내주더라. 우리가 출판사를 만들어서 우리 지역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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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 각종 통계 자료나 출판인 목소리를 들어보면 지역에서 출판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지역 출판사의 의미가 무엇이라 보나.

△정 : 지역에 계신 분들은 흔해서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어떤 것은 무척 좋은 콘텐츠인데 아무것도 안 하더라. 바다에 좋은 어종이 떠다니는데 아무도 낚시를 안 하더라. 소중하게 인지하지 못하더라. 서울과 수도권에서 바라볼 때 대부분 지역은 소비의 대상이지, 삶의 연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 문화, 뿌리에 관심이 적다. 간혹 통영이 고향인 서울 지역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지만, 대부분 지역의 아주 깊이 있는 콘텐츠까지 소비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지역민과 소통하고, 지역 저자를 발굴하면, 회사의 색깔을 내는 데 가치가 생긴다. 통영 전영근 화백이 쓴 전혁림 화백을 다룬 책은 지역민이 굉장히 좋아한다. 선물한다고 10권씩 사가는 분도 있다. 전국과 지역 이야기를 같이 다루려고 한다. 사실 저도 서울 살 때 지역 콘텐츠를 잘 몰랐다. 지역 이야기가 전국에 소비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지역의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기록을 남겨야 할 주체가 적다. 그래서 출판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 : 지금까지 지역 시인의 책과 번역서를 냈다. 15일께 작은도서관 모임을 하는 어머니들이 만든 진주 유등과 관련한 그림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지역의 모든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지역 사정에 밝으니 거기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책으로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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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북스' 여태훈 대표.

△김 : 지역 출판이 없으면 지역 콘텐츠도 생산되지 않는다. 지역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으면 지역, 역사 문화도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역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지역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역 시인이 서울 출판사에서 1000권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책을 냈다고 하더라. 지역 작가, 시인이 그런 방법 외에는 책을 낼 방법이 없다. 지역 출판사가 있어서 지역 작가들이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책을 낼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 계속 지역 출판의 어려운 점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정 : 지역 저자 콘텐츠 선별의 어려움이 있다. 인쇄, 마케팅, 물류, 유통이 다 수도권에 빨대를 꽂아야 출판할 수 있는 구조다. 지역에는 소비가 적기 때문이다. 책을 이것저것 찍고, 종이도 이것저것 사용해봐야 인쇄를 할 수 있다. 파주는 워낙 많이 하니까 잘한다. 그런데 지역은 종이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서울에서 하면 다 해결되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더라. 처음에는 통영에서도 다 될 줄 알았다.(웃음). 물류 문제도 크다. 서울로 나가야 한다. 그게 가장 큰 한계다.

△김 : 우리도 1년 반 됐다. 지금까지 나온 책 소비 분석을 해보니, 거의 교보, 영풍, 다른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나가는 책이 70~80%다. 지역 콘텐츠로 책을 내도 지역민 관심이 적고, 콘텐츠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도 많지 않다. 의미가 있어서 책을 만들지만, 그 가치를 알아서 지역에서 소비를 많이 해주지 않는다. 그게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여 : 책을 파는 것과 만드는 게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편집, 홍보, 마케팅 등이 모두 지역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전문인력을 지역에서 찾는 게 어렵다. 스카우트를 하기에 비용도 만만치 않다. 편집자 전문 사이트에 북에디터 구인 광고를 냈다. 조회 수는 높지만, 지원서를 낸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구인 광고를 내기 전에 서울 지역 출판사에서 전문 인력 추천을 받았는데, 진주에서 살면서 책을 만들려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어렵지 않은 부분이 없다.

- 새롭게 지역에서 출판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할 부분이 있나?

△여 : 책은 사람과의 관계로 만들어진다. 출판사에 맞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움직일 수 있는 전문 인력이 꼭 필요하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 사람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이건 조언이 아니라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다.

△김 : 돈 버는 게 목적이라면 지역에서 출판사를 하지 마라. 정말 책이 너무 좋고 이런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업으로 지역 출판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관급 인쇄물 전문대행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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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피플파워' 김주완 출판미디어국장.

△정 : 서울 지인들은 유지가 되냐, 돈은 버냐, 자산가냐고 묻는다. 매달 직원 월급을 줘야 하니 굉장히 힘들다. 나쁜 짓만 빼고 공모도 하고 다 한다.(웃음) 게스트 하우스나 책방을 만들어서 수익을 내기도 한다. 지역에서 좋은 책을 만들어서 지역의 목소리를 내면서 (경제적으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큰 손해 없이 유지하는 것에 감사한다. 지역 출판은 '희로애락'의 결정체다. 그렇지만 책을 정말 좋아하면 할 만하다. 가치 있는 얘기를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에 생존만 할 수 있다면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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