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허가받지 못한 삶] (4) 떠날 수 없는 이유

고된 삶 속 버팀목 된 자리 '고마워서·기댈 곳 없어서' 사연 달라도 꼭 지키고파

이창언 김해수 기자 un@idomin.com 2016년 01월 15일 금요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가포5통 역사는 주민과 함께한다.

60년 전 척박한 땅을 개간할 때에도, 내 집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할 때도, 마을 앞 공사현장에서 끊임없이 소음이 들리기 시작할 때에도 주민은 마을을 지켰다. 올해 여든셋. 박순이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고마운 사람 있는 한…" = 박 할머니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마산으로 건너왔고 스물네 살 때 황해도 출신·10살 위 남편을 만나 가포5통으로 왔다.

박 할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마을에 막 정착했을 때에는 복숭아농사를 지었고 더 나은 살림살이를 위해 식당 일, 아파트 청소, 막노동, 유모 일을 했다. 바닷가에서 파래를 뜯어 팔고 홍합을 삶아서 시장에 내놓기도 했고 머리카락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한 적도 있다. 그때 번 돈을 차곡차곡 잘 모았으면 금방 부자가 됐을 터인데 노름을 즐겼던 남편 탓에 남은 건 하나도 없다. 일흔 중반까지 해오던 식당일도 그만둔 지금 박 할머니 소득원은 기초생활비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10여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8년간 병 수발을 들었다. 그 세월 할머니 몸도 많이 망가졌다. 막노동 일을 하다 다친 허리는 통증이 더 심해졌고 후두암도 생겼다.

박순이 할머니는 "동네가 개발되더라도 고마운 이웃들 머물 곳이 먼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해수 기자

그 때문일까. 지지난해 설엔 할아버지 제사도 못 지내고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사경을 헤매다 다시 정신이 돌아오자 담당 의사는 기적이라 했다. 유일한 위로제였던 담배도 그날부로 끊었다.

마산에 사는 동생, 경기도 안산에 있는 딸 집에서 지낼 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가포5통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미운'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재산이자, 한평생 터전인 집을 버릴 순 없다. 없는 살림에 짐이 되기도 싫다. '그래도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는 생각도 변함없다.

온종일 집에만 머무는 박 할머니에게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는 반장은 참 고마운 존재다. 우여곡절 많았던 세월, 뒤늦게 소망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늙은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고마운 사람들 머물 곳은 꼭 있었으면 좋겠어. 다들 살아야 하잖아…."

◇유일한 재산 = 한숙자(가명·80) 할머니는 2001년부터 가포5통에서 살았다. 한평생 부산에 머물다가 오갈 곳 없어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 할머니가 머무는 곳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3만 원에 8평 남짓한 집. 기초생활비와 국민연금만으로 한 달을 버틴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오던 남편을 2005년에 떠나보냈지만 한 할머니는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2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진 큰아들, 연락이 두절된 작은아들 등 슬하에 3남 1녀가 있지만 아무에게도 편하게 기댈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50세 가까이 홀로 막노동을 해오며 근근이 살아왔지만 당뇨에 고혈압까지 달고 사는 요즘은 감히 일할 엄두도 못 낸다.

"우리같이 없는 사람은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야. 그게 유일한 재산이거든."

이옥순(가명·76) 할머니는 마산합포구 월영동 태생이다. 스물넷에 마산 장군동에서 자란 남편에게 시집을 와 인근 가포5통에 신혼집을 차렸다.

하지만, 20년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낸 후 이 할머니는 늘 혼자였다. 슬하에 2남 1녀가 있지만 큰아들은 연락조차 닿지 않고, 서울에 살림을 차린 딸은 자주 보지 못한다. 그나마 김해에 있는 작은아들이 이 할머니가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기둥이다. 기초생활 수급대상이 아닌 이 할머니 소득은 자녀가 주는 용돈과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다. 그마저도 병원비, 전기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이 할머니는 겨울마다 걱정이 많다.

"우리 집은 아직도 연탄을 때. 근데 집이 오르막에 있고, 골목도 좁아서 연탄 넣기가 쉽지 않지. 지지난해 겨울에는 밑 집에서 연탄 100장 안 줬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야. 쫓겨나면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삶이 있는 한 이 땅은 바뀔 수 없다. 사람이 내쫓기듯 떠나서는 안 된다. 개발을 앞둔 땅에서 희망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 있지 않을까.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