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함양군 휴천면 한남마을 박찬조 이장

함양읍에서 국지도 60호선을 타고 엄천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울창한 숲이 엄천강과 맞닿아 아름다운 풍광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한남마을로 40가구 80여 명이 산다.

이곳은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18남 4녀 중 열두 번째 아들 한남군 '이어'의 유배지로 한남군 이름을 따 마을이름도 한남(漢南)이다. 한남군은 이곳 새우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병을 얻어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이곳에 2009년 귀향해 이장을 맡은 이가 바로 박찬조(65) 이장이다. 넓은 이마에 커다란 안경, 넉넉한 풍채의 외모는 '대기업 사장'감이다.

박 이장은 인근 유림면 회동마을이 고향이지만 아버지가 광복 이후 인근(마천·휴천·유림) 면장을 역임했고 자신도 늙어 고향에 오리라는 다짐을 실천하려고 퇴직하고 고향으로 왔다. 어릴 적 태어난 고향보다 엄천강이 있고 아버지를 따라와 보았던 휴천면에 더욱 호감이 가 강과 산이 어우러진 이곳 한남마을로 새 터전을 잡았다고 한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 30여 년을 부산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해양관련 요직에 종사하다 퇴직했다.

박찬조 이장은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아와 사람이 넘쳐나고, 웃음이 가득한 동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귀향 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마을주민 대다수가 70~80대인데다 다리와 허리가 불편하고 차량이 거의 없어 시장, 병원, 관공서를 방문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주민으로 같이 어울리다 보면 박 이장 차는 동네 주민 차지가 되기 일쑤였다. 거기에다 박 이장이 컴퓨터·휴대전화에 능하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것저것 안 시키는 게 없다. 수도가 고장이 나도, 가전제품이 고장이 나도, TV가 안 나와도 당연히 달려가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한남마을을 휴양지로 삼아 조용히 살려고 했으나 떠나가는 농촌, 가난한 농촌에 젊은(?) 일꾼이 들어와 등 떠밀려 시작한 동네 일을 하다 보니 이젠 농촌 티가 제법 나는 '촌사람'이 다 됐다.

이장이 된 후 처음에는 이것저것 불편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손꼽을 만한 보람찬 일도 많았다.

마을회관에 TV, 음향기기를 교체해 마을 자체적으로 정월 대보름 행사, 동네 단합행사 등에 활용한 것, 마을 기금으로 CCTV를 설치해 회관에서 한눈에 동네 구석구석을 볼 수 있도록 한 것, 겨울철이나 TV 소리에 마을 방송이 안 들린다고 해 개인 집집이 스피커를 달아 마을 방송시설을 개선한 것 등 예전보다 시설과 마을 환경을 많이 바꾸었다.

지난해에는 6차 산업 축제를 마을에서 열어 주민과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분기별로 대청소도 했고, 쓰레기 분리수거와 집하장을 정비했으며,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를 심어 꽃이 있는 마을로 가꿔나갔다. 축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강과 숲을 이용해 피서객 편의를 제공하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장터를 개설했다. 고구마, 감자, 밤, 곶감 등 농산물을 판매하였고 상시 전시가 가능한 상설전시장을 만들었다. 마을 자존심과 단합을 위해 '마을 깃발'도 만들어 마을 앞 도로변에 세워놓았다.

이런 그의 열정과 재능, 고향에 대한 애정을 아는 주민들이 그를 가만둘 리 없었다.

"마을 대동회에서도 꼭 임기(2년)를 더 해달라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다른 사람을 뽑아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이십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2년을 더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하."

사람 좋은 박 이장은 2012년부터 이장을 맡았다. 2년이 지나니 휴천면 이장단협의회장을 맡았고, 면 소재지 정비사업위원장 등 여러 가지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다.

박 이장은 이제 새우섬을 더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소득사업을 벌여 공동재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자원을 하나씩 둘씩 개발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축제도 열고 시설도 개선하고 싶은 꿈이 있다.

한남마을에는 단종 복위 모의 때 동원책을 맡았다가 발각돼 그의 아들과 함께 거열형(車裂形·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한 충의공 김문기 영정이 후손에 의해 보관돼 있고, 동신제를 지내던 축석대가 마을 앞 도로변 노송 밑에 있는데 면에서는 유일하다. 이런 자원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령화로 활기를 잃어가지만 젊은 인구가 유입돼 예전 농촌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전통이 살아있는 고향 같은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뒤를 이어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아와 사람이 넘쳐나고, 웃음 가득한 동네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