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포순환로 확장'현실이 된 불안감…'컨테이너 마을 회관' 철거 종일 공사 소음 시달리기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가포5통 '무허가촌'에 혜택은 없다.

내 집이지만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건 차라리 낫다. 녹슨 철판으로 바람을 막고 테이프로 깨진 유리창을 붙이면 그래도 살아갈 만했다. '이행강제금'을 내라는 통보나 이웃집이 허물어진 역사도 참았다. 그저 머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다. 옛 한국철강 마산공장 터에 38개 동, 4312가구를 짓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하고부터는 더 심해졌다. 무허가촌 주민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편의시설 전무 = 가포5통 주민 275명 중 60대 이상 노인은 총 83명. 전체의 30%에 해당한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없다.

노인 대표 편의시설인 경로당은 비움고개 너머 가포4통에 있다. 노인 대부분이 고혈압·당뇨를 앓는 상황에서 경로당에 가는 건 엄두도 못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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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5통 주민 쉼터 역할을 하는 지장물 바로 옆으로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이창언 기자

그나마 노인이 기댄 곳은 컨테이너가 대신했던 마을회관이었다. 마을 입구 한쪽에 놓였던 컨테이너는 난로와 전기장판 등을 갖추고 주민을 맞이했다. 하지만 지난해 부영은 '도로 확장을 위한 장애물 철거'를 이유로 컨테이너를 없앴다.

현재 가포5통 마을회관은 2반 안쪽 10평 남짓한 방이 대신하고 있다. 가포5통장이 자신의 집 빈방을 활용해 만든 공간이다. 통장이 집을 비운 낮에는 이용하기가 어렵지만 '그런 불평은 사치'라는 걸 주민 모두 잘 알고 있다.

가포5통 3·4반 가구 대부분은 아직도 '공동수도'를 사용한다. 6~8가구가 200m 가까운 수도관 하나에 의지하여 물을 쓰는데 요금 정산 문제로 주민 간 다툼도 일어난다. 공동수도를 사용 중인 70대 부부가 말한 월평균 수도요금은 2만 원이다. 통계청이 밝힌 4인 가구 기준 월평균 요금(2만 3000원)과 맞먹는 수치다. 누수가 의심되나 수리는 꿈도 못 꾼다.

부부는 "주민끼리 상의해 낮에는 배관 밸브를 잠그기도 한다"고 했다. 정옥련(60) 4반 반장은 "개인수도를 놓게 해달라며 몇 번이고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터 주인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고 밝혔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쉴 새 없이 들여오는 아파트 공사 소리, 복숭아나무 식재를 막고자 설치한 감시초소도 말 못할 불편함이다. 마을 앞 도로에서는 대형 트럭, 각종 중장비가 끊임없이 오가며 소음을 유발한다. 인도가 없는 도로 여건상 사고 위험도 크다.

월영동 부영아파트 건설은 지난해 10월 착공했지만 가림 벽은 지난주가 돼서야 설치를 시작했다.

마을 뒷산에 있는 '감시 초소'도 문제다. 2006년 부영은 차후에 있을지 모를 보상 갈등에 대비, 복숭아나무 식재를 막고자 초소를 설치했다. 초소에서는 1~2명이 상시 근무하며 복숭아 경작을 통제했다. 현재 협의를 거쳐 주민 감시는 예전보다 덜해졌으나 외부인이 산에 오르려 할 때면 들리는 '진입 금지' 경고는 여전하다.

주민 처지에서 그래도 이만한 불편함은 견딜 만했다. 여건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가포순환로 4차로 확장'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눈앞에 닥친 위기 = 가포순환로는 가포5통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도로는 창원시하수관리사업소 예비처리장, SK에너지 마산물류센터 등을 걸친다.

도로는 왕복 2차로(마을 입구~시내버스 천연가스 충전소)와 1차로(시내버스 천연가스 충전소~국제결핵연구소 입구)가 섞여 있다.

가포순환로 확장은 부영이 월영동 주택건설사업계획을 세우면서부터 가시화했다. 2006년 7월 부영이 경상남도로부터 받은 주택건설사업계획에는 '가포순환로 확장·도로 개설 후 창원시에 기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계획에 따른 확장 구간은 가포5통 마을 입구~SK에너지 마산물류센터 부근 2차로다.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인 옛 한국철강 마산공장 터. /이창언 기자

확장 공사 최종 목표는 드림베이로와 연결이다. 청량산 터널~가포순환로~드림베이로를 4차로로 이어 월영동 일대의 원활한 차량 소통을 꾀하기 위함이다. 공사는 이르면 3월 착공한다.

부영은 지난해 말 확장에 필요한 가포5통 내 30여 가구를 방문, 실평수 측정을 마쳤다. 단, 평수 측정 외 감정평가나 보상 논의는 일절 없었다. 주민이 '설명이라도 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착공까지 한 달 반. 주민 불안감이 날로 커지는 이유다.

가포5통에서 35년을 살았다는 심순례(70) 씨는 주민이 안은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구한 운명을 탓하는 일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어 그는 자신의 사연을 덧붙였다. "시댁이 동네 뒷산 MBC송신소 근처라 이 동네로 왔어. 송신소 근처에서 30년을 살았는데 3년 전 가포신항 배후도로 터널 공사 때문에 쫓겨났어. 보상을 받긴 했는데 그 돈으로 시내에 전세라도 구할 수 있나. 4반 안쪽에 새집을 마련했지. 근데 또 쫓겨날 판이야."

이들에게 희망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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