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받지 못한 삶] (2) 끊을 수 없는 역사의 사슬

"여긴 우리 땅이 아닙니다. 언제 쫓겨나도 저항하기 어렵죠."

1969년까지 가포5통 1~4반(이하 가포5통)은 ㈜동양고속운수 소유였다. 그러다 1974년 소유권은 한 개인에게 넘어간다. 4년 뒤 소유주는 가포5통 26만 7000여㎡를 교육법인 경남학원(현 학교법인 한마학원·이하 한마학원)에 무상으로 기증한다.

애초 한마학원은 기증받은 땅에 '가포캠퍼스'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를 포기, 1989년 5월 문교부(현 교육부)로부터 토지매각처분승인을 받았고 6~7월 땅 일부(4만 9256㎡)를 세 명에게 팔았다.

이를 두고 인근 주민 사이에서는 "10여 년째 학교시설 용지로 묶어 지역개발을 막더니 뒤늦게 외지인에게 팔아 개발이 더 늦어지게 됐다"는 원성이 나오기도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가포5통 입구. /이창언 기자

2006년 한마학원은 남은 땅 전부를 ㈜부영에 팔았다. 4년 뒤 부영 내 회사분할을 이유로 소유주는 ㈜부영주택으로 바뀌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등기부등본·토지대장에 드러난 소유권 이전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하지만 '기록'에서는 찾지 못할 사연도 많다.

◇마을의 시작 = 가포5통 본 소유자를 두고는 말이 엇갈린다. 러시아, 일제, 국방부 소유였다는 이야기가 돈다. 여러 말이 만나는 지점은 1950년대 후반이다.

"마산지역 한 유지께서 국가로부터 가포5통을 사들인 게 시작이었어."

지역 유지는 사들인 가포5통 땅 일부를 친인척에게 맡겼다. 그들이 척박한 땅을 개간해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1세대 주민 몇몇이 정착했다.

사람 몇 안 되던 동네에 '무허가 촌'이 형성된 것은 1962년 즈음이다. 갈마봉 자락에 이뤄졌던 사방사업은 집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하나둘 가포5통으로 불러모았다.

"여기저기서 서툰 솜씨로 집을 짓고 땅을 일구기 시작했어. 뒷산에 가득한 복숭아나무는 그때 심은 거야."

2013년 2월 복숭아나무 비료가 가득한 마을 풍경. /이창언 기자

대부분 주민은 땅 소유권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당장 먹고살기 급한 대부분 주민은 그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소유주가 바뀌는 일이 생겼지. 땅을 사들인 사람은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라는 말이 돌았고. 지역 유지가 갑자기 왜 땅을 팔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려. '군사정권 힘에 억눌렸다', '개인 이익을 위해서다' 등 갖가지 이야기가 나왔어. 박 전 경호실장이 세간의 눈을 피하고자 동양고속으로 소유권을 다시 이전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했어."

소유권이 최종적으로 박 전 경호실장이 세운 한마학원 앞으로 넘어온 과정·까닭에 대해서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부당하게 얻은 땅을 지키고자 교육재단으로 귀속시켰다', '적합한 절차를 거쳤다', '그 넓은 땅을 무상으로 기증했다는 게 이해되느냐' 등 추측만 무성하다.

여기서, 1978년 한마학원에 무상으로 기증했다는 개인 소유자 이름·나이·한자 표기가 박 전 경호실장 주변 인물이라 유추되는 이의 것과 같다면 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특히 그 인물이 박 전 경호실장 처남이 세운 동양고속 감사 명단에서도 보인다면 '세간의 눈을 피해 소유권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소유하지 못하는 땅 = 이후 오랫동안 가포5통은 한마학원 소유였다. 물론 그 사이 주민도 마냥 넋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땅을 사들이고, 하다못해 임대료라도 내고자 법인을 찾아간 사람도 있었죠. 그때마다 법인은 '아무 걱정하지 마라'는 말로 주민을 안심시켰죠."

'땅 소유권이 바뀔 일이 생긴다면 주민과 상의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96년 한마학원이 가포5통 1반 땅 일부를 개인에게 판 일이 발단이었다. 새 주인은 지금까지 무상으로 사용한 대가를 받으려 했다.

"소송에 들어갔어요. 없는 살림에 한 푼 두 푼 모아 소송비를 마련했죠." 창원지방법원이 주민 손을 들어주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무상사용을 두고 일부 승소했지만 소유권이 인정되지는 못했다. 평생을 살아온 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유자와의 소통뿐이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혹 땅을 팔 일이 생긴다면 주민과 꼭 상의해 달라'. 협의가 아닌 부탁만 남았다.

마지막 희망마저 깨진 건 2006년이다. 한마학원이 남은 땅 전부를 ㈜부영에 판 것이다. 물론 주민과 상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보고 도둑놈이라 하겠죠. 공짜로 살아와 놓고 무슨 말이 많으냐는 거죠. 하지만 우리도 반세기 넘게 살아온 땅을 지키고자 죽을 힘을 다했어요."

현재 가포5통 터 소유주는 부영이다. 마을 바로 앞 부영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1~4반 역시 주거 단지로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온다. 언제 쫓겨나도 이상할 리 없는 사람들 아픔은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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