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8편

6월 24일 수리비∼팜플로나 21㎞

하루를 여는 새벽길은 늘 상쾌합니다. 그런데 이곳 주변 환경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이때까지 지나온 길 중 최악이었죠. 공장지대를 지나야해서인지 주변 환경이 안 좋아서인지 몸은 천근만근~!!! 아마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무거운 배낭을 지고 며칠을 걸었더니 피로가 누적되었나 봅니다.

그래도 공장지대를 벗어나니 다시 예쁜 길이 나왔습니다. 어제 프랑스인 장이 묵는다던 라라소아냐(Larrasoana)를 지나가니 큰 개울을 따라 걷는 길이 길게 이어졌어요. 좀 시원하기도 하고 해서인지 조금 몸이 풀리는 듯했는데 다시 그늘도 없는 길을 가게 되니 자꾸만 쉴 곳만 찾아지더라고요.

팜플로나 가는 길.

겨우 그늘을 찾아 쉬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를 지나갑니다. 모두 올라! 올라!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올라(Hola)'는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예요. 그리고 '부엔 카미노(Buen camino)'라는 말도 참 많이 했지요. 원래 좋은 길이란 뜻이지만 순례자들에게 행운과 축복을 빌어 주는 말이에요.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는데 조금 쉬며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하려니 정말 못 걷겠는 거예요. 무거운 발을 옮기려니 경치도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아니 카미노를 걷고 온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 길을 다시 걷고 싶다고 하는 거지? 한 번이면 족하겠구먼.'

다음에는 다른 곳에 가지 여기를 두 번이나 걷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주변은 온통 밀밭, 가도가도 마치 제자리인 듯했어요.

힘들지만 웃으며 브이.

아이고 어깨야 다리야∼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나 우리는 여기가 팜플로나(Pamplona)인가보다 하고 내심 좋아하며 시내에 들어가 물어보니 아직도 5㎞나 더 가야 한다는 겁니다. 완전 좌절!! 정말 차를 타고 가고 싶은 유혹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절대 안 될 일~!! '힘들면 배낭은 부칠 수 있어도 차 타는 것은 절대 안 한다'고 나와 약속했었거든요! 하는 수 없이 길가 벤치에서 양말 다 벗고 배낭에 발을 올리고 누웠습니다. 쉬면서 하늘을 올려 보는데 가로수가 참 특이하게 잘려 있더군요. 그 나무 위로 보이는 하늘도 좋았고 스페인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 누워 있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어요. 다시 심기일전해서 걷기 시작했죠.

팜플로나 골목길.

친절한 스페인 친구 호세와 나란히 걷다 보니 어느새 팜플로나 입구 막달레나 다리가 보입니다. 야호~!

그런데 기쁨도 잠시 우리가 가려는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겨우 알베르게를 찾아갔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여긴 세탁도 공짜! 거기다 밥도 해먹을 수 있고 시설도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었어요.

한국가족 팀과는 오늘 계속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는데 이젠 탄력이 붙었는지 우리보다 먼저 와서 있네요. 우리도 씻고 세탁하고 나니 시몬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 오다가 넘어졌다며 무릎에는 피가 흐르고 손가락 두 개는 삐었는지 심하게 부어있는 거예요. 얼른 타박상 연고를 발라주고 또 소독을 해 주었어요. 이런 와중에도 나에게 '마사지해 주기로 했는데' 하며 미안해하는 거예요. 그런 걱정하지 말고 치료 잘하라고 하며 앞으로 계속 걸을 수 있겠는지 물어보니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도 느낀 거지만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심하게 생겨도 대부분 사람은 포기하지 않아요. 그들의 의지력에 자주 감탄을 했답니다.

팜플로나 초입 다리.

일단 시몬은 병원에 가기로 했다고 해서 우리는 장을 보러 나갔어요. 한국가족 팀도 초대해서 같이 먹기로 했죠. 모처럼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기분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쌀도 사고 감자도 사고 달걀도 사고 샐러드용 채소도 샀어요.

그런데 주방이 3층에 있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완전 고역이었어요. 그동안 다리가 너무 지쳤기 때문이죠. 절뚝거리며 다니다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어요.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다들 다리와 발, 어깨가 아프니 말은 안 해도 서로 입장을 다 안다는 뜻이죠.

어느 건물 모퉁이, 순례자를 위한 방향 표시.

밥아, 너 참 오랜만이다!

아픔을 무릅쓰고 언니랑 즐겁게 밥을 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가져간 라면수프에 가져간 마른멸치 몇 개 넣고 감자 듬뿍 넣어 국 끓이고 계란말이하고 가져간 참기름과 간장으로 샐러드도 만들고 나니 멋지게 한 상이 차려졌어요. 거기다 밥도 아주 잘 된 거 있죠. 그런데 밥을 너무 많이 해서 시일~컷 먹고도 다음날 주먹밥까지 싸갔다니까요.

오랜만에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죠. 주방에서 같이 식사 준비하던, 한국에도 와봤다는 체코 부부와 스페인 삼인방에게도 나눠주니 아주 맛있게 잘 먹는 거예요. 그리고 스페인 삼인방은 가족이 아니고 카미노에 와서 만난 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죠. 시몬이 맘에 걸렸지만 병원에 갔다 오면서 순례자 메뉴를 먹고 온다고 하더라고요.

팜플로나 초입 마을풍경.

정리하고 나서 지갑을 보니 돈이 다 떨어져 가네요. 그래서 ATM기에 가서 돈을 찾는데 정말 헷갈렸어요. 스페인에 오기 전에 남편과 많이 실습을 하고 왔는데도 ATM기마다 다 다르니 달달 떨리며 당황되더라고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현금을 찾았어요. (남편은 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걸 문자로 보고 '돈을 찾을 줄 아는구나' 싶어 내심 안심을 했다는 후문이네요. 하하)

팜플로나에서 교포 언니(왼쪽)와 함께.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물집은 안 생겼지만 발도 너무 아프고 짐에 짓눌린 어깨도 아프고, 특히 다리 전체가 아파서 쉽게 잠이 들지 못했어요.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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