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독립영화와 '크라우드 펀딩'…십시일반 펀딩 프로젝트 온라인 타고 전국 확산 〈오장군의 발톱〉 촬영 시작

"저희는 영화 <오장군의 발톱>이라는 집을 지으려 합니다. 시민들이 모아준 벽돌을 주춧돌 삼고 후원자들이 모아준 정성을 지붕으로 올리고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예술적 기술을 모아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 합니다."

지난 2일 오전 11시 상남영화제작소(창원시 사파동 주민센터 2층) 앞마당에서 열린 <오장군의 발톱> 고사에서 김유철(경남민예총 부이사장) 시인이 축문을 읽었다.

<오장군의 발톱>은 '십시일반 제작펀딩 프로젝트', 즉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 소셜미디어·인터넷으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으로 제작되는 지역 영화다.

최근 크라우드 펀딩이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독립영화계를 풍성하게 하는 견인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귀향>, <또 하나의 약속>, <천안함 프로젝트> 등도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상남영화제작소가 지난 2일 <오장군의 발톱> 고사를 열었다. 이날 모인 제작진과 후원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지 기자

◇시민 벽돌로 튼튼해진 <오장군의 발톱> 

김재한 감독이 연출하는 <오장군의 발톱>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ohbaltop)에는 '나도 제작자'라며 십시일반 제직펀딩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시민의 사진이 줄을 잇는다. 지역 영화 제작을 위해 10만 원 이상을 쾌척한 시민 덕에 벽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상남영화제작소는 지난해 3월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며 인권과 평화를 말하는 <오장군의 발톱>을 영화화하기로 하고 총 제작비 3억 원 중 1억 원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으자고 계획했다. 지난 2014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에 착안해 경남에서는 영화로 시민의 마음을 모아보자고 했다. 나머지 제작비 2억 원은 영화·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산업 투자를 진행하는 창업투자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영화 준비 과정에서 창업투자사의 투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설미정 상남영화제작소 대표는 "이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막막했다. 고민이 깊었다. 시민의 힘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열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상남영화제작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SNS 등을 통해 <오장군의 발톱>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2012년에 제작한 경남 자생영화 <안녕, 투이>의 경험을 살려 시민의 힘을 보여주자고 알렸다.

시민들은 응답했다. 그해 10월 본격 돌입한 십시일반 제작펀딩 프로젝트는 지난달 말 기준 60% 이상을 달성했다. 10만 원부터 약정할 수 있는데 나도 제작자에 참여한 시민 가운데 일반인이 90%를 넘었다. 500여 명에 달했다. "강의료를 기부하겠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돕고 싶다"처럼 여러 메시지도 함께 전달됐다.

기금 약정뿐만이 아니다. <오장군의 발톱> 제작 어려움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이불, 베개, 밥솥 등 영화 제작에 필요한 물품과 의상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오장군의 발톱>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영화배우 류승룡 씨. /상남영화제작소

나도 제작자로 참여한 박해선(46·창원시 성산구) 씨는 "지역 영화를 함께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데 큰 비용이 든다고 들었다. 그래서 10만 원이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아직도 제작 여건이 썩 좋지 않다. 많은 시민이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영화가 대박 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장군의 발톱> 크라우드 펀딩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영화배우 류승룡이 속한 서울의 한 엔터테인먼트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 1000만 원을 투자했고 한 시민은 제작비에 써달라며 2500만 원을 내놓기도 했다.

<오장군의 발톱>을 '함께 꾸는 꿈'이라고 말하는 설 대표는 "시민들이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또 어려운 지역 영화계도 공감하는 것 같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문화공동체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사례는 전국에서 주목할 것이다"고 기대했다.

상남영화제작소는 오는 가을 개봉을 목표로 4일 창원 의창구 소답동 일대에서 첫 촬영을 한다. 한 달 정도 촬영을 하고 CG작업 등을 거쳐 오는 하반기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의 한 장면. 5만 여명이 후원했다.

◇독립영화계가 주목하는 펀딩의 힘

지난달 10일 거창에서 시사회를 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도 다음카카오의 뉴스펀딩으로 5만여 명의 후원자가 힘을 보탠 작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1년 반 만에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아 사망한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담은 <또 하나의 약속>(감독 김태윤), 제주 4·3 항쟁을 다룬 영화 <지슬>(감독 오멸) 등도 크라우드 펀딩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은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작으로 꼽힌다.

이렇듯 시민의 힘은 흥행만 좇아 만드는 대형 기획사 중심 상업영화가 아니라 사회 문제를 꼬집고 민감한 사안에 눈을 감지 않는 작은 영화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직접 나서 저예산 영화를 보호하고 작은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 어려운 여건 탓에 개봉할 수 없는 여러 영화를 극장에 내거는 크라우드 펀딩도 눈에 띈다.

도내에서는 지난해 한국전쟁 직후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을 다룬 구자환 감독의 <레드 툼>(Red Tomb·빨갱이 무덤)이 시민 모금으로 전국 동시개봉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제8회 진주같은영화제'를 연 진주시민미디어센터는 시민 참여로 독립·예술영화를 선보일 수 있었다.

진주시민미디어센터는 지난해 7~8월 크라우드 펀딩으로 약 150만 원을 모았다. 이 기금이 지역에 차별 없이 영화를 보여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승아 담당자는 "정부나 시 지원금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안정적인 자금 확보가 필요했다. 처음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평소 영화를 보러 온 시민과 다른 지역 영화인이 후원했다"며 "시민 참여는 기금뿐만 아니라 홍보까지 이어진다. 올해도 진행할 계획이다"고 했다.

김재한 감독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 극심해지는 독과점적 영화 시장은 독립영화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대안으로 크라우드 펀딩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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