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양극화 심화 등 현실만 보면 유리한 야권…분열 덕에 여권압승 전망도…민심 찾기보다 정쟁에만 몰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어둠 속이다. 안철수(무소속) 의원을 필두로 한 탈당·창당 러시가 야권을 어떻게 재편할지, 소위 친박 대 비박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새누리당 내분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권에 유리한 지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180석' '200석' 등 구체적 수치까지 거론되며 4월 총선 압승 전망이 쏟아진다. 그간 박빙 승부를 펼쳐온 수도권에서 야권이 참패하면 이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견이 없진 않다. 안철수 신당이 새누리당 지지층·무당층을 잠식할 수 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안 의원 탈당 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과 여권 대선주자 지지율이 다소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2년 총선처럼 야권이 통합·단일화를 이룬다고 꼭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1996년 총선처럼 야권이 분열한다고 꼭 패배하는 것도 아니라는 '실증적' 반박도 있다.

◇여야 진짜 '혁신'은 어디에 = 더 주목할 변수는 새누리당의 안일함이다. 2012년 총선·대선과 여러모로 겹쳐지는 현 국면이다. 정권 말기, 권력 교체기에 펼쳐진 같은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다.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걸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전통적 보수 노선에서 탈피, 야권 전유물이다시피 한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게 대표적이다.

김무성(맨 오른쪽)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와 기업, 노조에 바라는 메시지를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총선을 100일 앞둔 지금, 새누리당에 당시 같은 절박감은 보이지 않는다.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재·보궐선거 패배와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으로 궁지에 몰린 그때와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박근혜 정부가 '예뻐서' 국민이 참는 게 아니다. 승리감과 야권 분열에 취해 변화를 게을리하고 정쟁에만 몰두하면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른다.

원내대표로서 여권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됐다가 낙마한 유승민 의원은 지난해 4월 국회 연설에서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다. 고통받는 국민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다"며 증세에 기반한 중부담-중복지, 공정한 고통분담, 공정한 시장경제, 사회적 대타협 등을 화두로 던진 바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새누리당 안에 보수 혁신을 추구하는 힘이 사라진 것 같다"고 언급한 것은 여권의 오만을 질타하는 경고등이 아닐 수 없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분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 삶에 대한 무감각과 무능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탈당한 안철수 의원 너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혁신'을 말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천 주도권과 방식, 부패·막말 인사 배제 같은 당내 문제에 국한됐을 뿐 민생을 어떻게 개선할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벼랑 끝에서 구해낼지, 또 당 구조를 그에 맞춰 어떻게 뜯어고칠지에 관한 논의는 전무했다. 적어도 서민 중심,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사회적 약자 또는 그를 대표할 만한 인물 대거 공천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왼쪽) 대표와 탈당한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야권이 결사반대하는 노동개혁을 봐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 안이 실효성(임금피크제)은커녕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만 넘쳐났지 실질적인 청년실업 대책, 비정규직 보호 대안이나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결연한 정치 행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일부 고연봉·정규직 노동계층 이해만 대변한다는 시선에서 야권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심판론' 더이상 먹히지 않는 이유 =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경제 성장과 민생 안정을 약속하며 집권했으나 결과는 많은 국민이 느끼는 그대로다. 곳곳에서 구조 조정·강제 해고로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고 기업 수익성·채산성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양극화 심화로 소득 불평등 지수(지니계수)가 2009년(0.266) 이후 최대치(0.262)를 찍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전·월세 폭등, 비정규직·실업자 증가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사에 따르면 체감 청년실업률(지난해 7월 기준)은 무려 22.5%에 달한다.

'2015 경남 중부권 채용박람회'에서 이력서를 작성 중인 취업준비생. /경남도민일보 DB

이런 현실만 보면 야권이 '마땅히' 이길 수밖에 없는 2016년 총선 그리고 2017년 대선이어야 한다. '정권 심판' 당위성 자체를 부정할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문제는 그것을 '말하는' 야권이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씨는 지난달 18일 자 <한겨레> 칼럼에서 야권의 '집권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려면 '정권교체를 원하는가?' '야당이 더 나은 대안인가?' 두 질문 모두에 '그렇다'고 답하는 국민이 더 많아야 한다. 아무리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도 '더 낫다'는 인식을 주지 못하면 정권은 교체되지 않는다. 국민은 야당에 세 가지를 묻고 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위를 맡길 만큼 강한가? 야당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나 같은 보통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주고 돌봐줄 수 있는가?"

'나처럼' 힘없는 사람 편에 서서 듬직하게, 설득력 있게 세상을 바꿔나가는 야당. 지금 그런 야당이 존재할까. 내부 갈등으로 밤낮을 지새우고, 오직 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떠넘길 뿐 뚜렷한 자기 민생 정책 하나 각인하지 못하고 있는 현 야권으로선 갈 길이 너무나 멀어 보인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노동개혁법안 저지 집회./경남도민일보 DB

앞서 언급한 대로 새누리당도 전혀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소위 야권 심판론이라는 '유체이탈'적 선거운동으로 2010년 지방선거 패배를 자초했음에도 다시 또 '야권 심판'(김무성 대표, 지난달 31일) 운운하고 있다. 당시 선거 승리로 기세등등했다가 바로 다음 달 재·보선에서 안일한 공천, 오만한 태도로 고꾸라진 민주당 사례도 잊은 걸까.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왜 '보수 혁신'을 호소했는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자영업자·청년·여성 등 취약계층 정책 발굴을 왜 강조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얄팍한 경제 활성화 공약, 포퓰리즘적 복지 정책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는 끝난 듯하다. 재벌 대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소위 '낙수 효과'나 근본적 강제 없는 경제민주화, 재원 대책 없는 복지 확대가 어떻게 귀결됐는지 지난 수년간 국민은 똑똑히 지켜봐 왔다. 뾰족한 대안이 없으면 솔직하게 현실을 설명하고 고개부터 숙이는 게 현명한 길이다. 참담한 생존의 고통 앞에 '죄인이 아닌 자'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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