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8) 2000년 초반에도 잡자마자 버려졌던 '물텀벙이'

가슴이 답답한 날 눈을 감으면 통영 다도해의 여러 섬과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맞닿은 바다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어느 해, 어떤 인연으로 통영 섬 대부분을 조사해야 할 일이 있어 늦가을에서 그다음 해 봄까지 열심히 섬들을 돌아다녔다. 또한, 그다음 해 여름, 보고서를 작성하던 와중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신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드러나 다시 통영의 섬들을 돌아다녔다. 창원 촌놈이 물메기를 제대로 만난 것도 이 해 겨울의 일이다.

나는 그 당시까지 물메기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영의 섬 풍경은 달랐다.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올망졸망하게 늘어선 겨울 어촌마을 집집이 빨랫줄이나 시렁에 매달린 물메기는 너무도 생소하면서도 이채로웠다. 처음 며칠 동안은 흐물거리고 물컹거리지만 몇 날 며칠을 말리다 보면 색깔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짝 마른 포가 되었다.

바닷바람에말라가는 물메기./경남도민일보 DB

한번은 욕지도 동항의 시장 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에게 마른 물메기 포를 한 마리 사면서 어떻게 먹는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그냥 구워서 먹거나 찜으로 해먹으면 된다고 하였다. 찜을 할 형편은 안되어서 숙소에 들어가 버너에 구웠더니 냄새는 고소한 것이 먹을 만할 것 같았다. 그러나 냄새와는 달리 물메기는 몸에 간직하고 있던 바닷물을 그대로 바짝 졸여 몸을 말린 탓에 짤 수밖에 없었다. 말린 지 너무 오래되어 딱딱하고 짜기까지 한 물메기를 다 먹지 못하고 거의 반쯤 그대로 남겼던 기억이 난다.

물메기는 껍질의 얼룩이 표범과 같아서 표어(豹魚)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무늬가 있어서 문표어(文彪魚)라고도 한다. 생긴 모양이 메기와 비슷하고 입이 커서 물메기라고도 부른다. 원래 물메기는 쏨뱅이목의 꼼칫과에 속하며 정식 학명은 꼬치다. 지역에 따라서는 꼼치, 물미거지, 물곰이, 물잠뱅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원래는 잡으면 바로 바다에 버려지는 물고기였으므로 물텀벙이라고 불리기까지 하였다. 최근 수산과학원은 미거지, 꼼치, 물메기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각각 다른 물고기라고 밝혔다. 미거지는 울진 이북에서 잡히며 가장 크고 귀한데 색이 누런색이다. 꼼치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잡히고 중간 크기이며 얼룩무늬로 회색이다. 물메기는 주로 서남해안에서 잡히고 가장 작은데 약간 누렇고 붉은색을 띤다. 하지만, 언뜻 보아서는 다른 것을 잘 못 느낀다.

▲ 손질 전 물메기./경남도민일보DB

김려는 <우해이어보>에 물메기를 설명해 두었다. "물메기는 성질이 사납고 탐욕스러워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으므로 물고기들이 모두 두려워한다. 이 물고기를 잡을 때는 새끼줄에 온갖 어류의 고니를 꿰어 뱃전에 길게 매달아 놓거나 물고기 머리를 물속에 넣어 바다에 곧추세운다. 그러면 물메기가 반드시 다가와 물고기 머리를 문다. 이때 천천히 배를 돌려 얕은 물가로 나와 뱃머리를 바다로 향하고 배 꼬리를 물이 얕은 뭍으로 둔다. 뱃머리에서 작은 징으로 강하게 한번 치면 물고기가 깜짝 놀라며 얕은 물 밖으로 튀어나간다. 이때 대나무 자루로 된 쇠 창으로 찔러서 잡는다. 이 물고기는 잡기도 어렵고 살도 맛이 없어 잘 안 먹는다."

아마도 경상도 지방에서보다는 전라도 지방에서 물메기를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0년 초까지도 경남에서는 물메기를 국이나 탕을 끓인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하였고 찜은 구경도 한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나면서 물메기는 외면당하던 신세에서 각광받는 물고기로 변하였고 효자 어종이 되었다. 물메기탕이 해장국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원래는 산지에서 어느 정도 소비되고 나머지는 말려서 포나 찜으로 먹었으나 해수를 실은 물차가 발달하면서 물메기를 산 채로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물메기탕이 유행하게 되었다.

▲ 물메기탕./경남도민일보DB

물메기탕을 끓이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끓이는 순서를 어기면 살이 해체되어 먹기가 불편하다. 우선 멸치, 다시마, 양파, 파, 황태머리 등 취향에 따라 넣고 육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여기에 무와 파, 콩나물 등을 넣고 먼저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한다. 한참 끓을 때 토막 낸 물메기를 넣고 마늘 고추 등을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식초 등으로 가미하여 떠먹으면 된다. 물메기찜은 반쯤 마른 물메기를 양념해서 두었다가 콩나물이나 파 등과 같이 찌면 된다. 어찌 되었든 물메기의 살이 무르므로 제일 늦게 넣고 가장 먼저 건져야 하는 원칙이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옛날에는 잘 먹지는 않았지만 왜국(倭國)의 상인들이 매번 그 껍질을 구하므로 껍질을 벗겨 깨끗하게 말려서 몰래 동래의 왜인들에게 판다고 하였다. 당시 동래에는 왜관이 있었고 그곳에는 일본 상인들이 많이 출입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물메기 가죽으로 무엇을 하는지 그 소용처는 잘 모른다고 하였다. 대개 물고기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으로는 조선시대 당시의 기술로 보면 옷이나 신발, 삿갓 등에 많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물고기 가죽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물고기 가죽으로 지갑, 가방, 열쇠고리 등과 장신구까지 만들어 사용한다. 흔히 물고기 가죽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상어와 가오리, 장어 등이다. 그러나 민어 등 큰 물고기도 자주 사용되는 것이며 물메기와 같이 가죽이 얇은 물고기도 그 가죽을 활용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무수히 많은 물고기 가죽이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대개 가정집에서 제사에 사용되는 물고기인 돔이나 민어, 조기 종류의 물고기가 적당히 파들하게 말랐을 때 쪄서 다시 조금 식히면 가죽이 마르면서 장력이 무척이나 강해져 생선살을 잘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으로도 물고기 가죽의 장력을 알 수 있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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