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교포…조선인 정체성 잃지 않도록 도와야

경남 출신 재일교포들을 초청하는 방안을 알아보려고 올가을 일본 교토에 다녀왔다. 일본 정부와 사회의 차별·멸시에 맞서고 견디며 64년을 살아온 한국국적 동포 2세 이상재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말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것이 어린 시절 일이 아니었다. 어른이 돼서 머리와 입이 굳어버린 조건에서 그렇게 했다.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 한반도 도래인도 공부했다. 재일교포 사학자 박종명 지도 아래 세 사람이 교토도래인연구회를 무어 연구했고 그 결과 <교토 속의 조선(京都のなかの朝鮮)>(1999)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은 이 책을 보고 뱀무덤을 찾아가는 정보를 얻었다. 뱀무덤은 교토를 개척한 신라계 도래인(진하승)의 것으로 알려진 고분인데, 요즘 들어 유홍준 저작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당시 이 씨는 학자가 아니었고 그냥 회사원이었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이 씨는 한국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이럴 수 있었지 싶다. 이 씨는 어린 시절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 비롯된바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그이는 교토조선제2초급학교와 교토조선중급학교로 안내했다. 자기 모교인데, 갈수록 쪼그라들어 이제는 전교생이 저마다 60명 40명 수준이라 했다. 차별이 심해져 줄었느냐 물었더니 다른 더 큰 이유가 있다 했다. 조선학교는 그냥 버림받은 존재였다. 일본 정부가 가장 먼저 버렸다. 식민지배와 전쟁 동원으로 재일교포를 만들어 낸 원죄가 있는데도 그랬다. 다른 일반 학교에는 다하는 무상의무교육이나 무상급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학부모 부담이 엄청 많다. 선생님은 월급을 제때 못 받고, 학부모는 인건비를 줄이고자 청소나 보조 같은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조선학교는 남과 북의 조국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한때 도움을 줬던 북한은 자기 손발(조총련)조차 망가졌으니 이제 다른 말이 더 필요 없다. 가난해서 자식을 버린 셈이다. 그런데 나름 산다는 남한 정부도 똑같다. 무신경·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때로는 이런 조선학교들을 위해 '책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민간단체에 대해 사찰도 했다. 자기 밥은 한 술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밥 담아주는 바가지까지 깨버리겠다는 얘기다. 한국 국적을 유지하든 일본 국적으로 옮겨가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일본에서 우리 민족교육이 죽으면 이 씨 같은 재일교포는 더는 나오지 못한다. 이 씨는 말한다. "일본서는 한국 국적을 밝히면 바로 차별과 무시를 받는다.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데 숙이고 들어갈 수 없다. 귀화는 차별이 없어지고 나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정체성이 무너지면 일본 귀화가 많아진다. 조선학교를 도와야 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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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재일교포 가운데 북한 국적은 없다. 있은들 뭐가 문제겠는가만은. 50만 명가량에서 80%가 남한 국적이고 20%는 조선 국적이다. 여기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한다. 남도 북도 국가가 없던 1947년, 일본이 외국인등록령으로 강제로 우겨넣은 민족 딱지라고 한다.

출판국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도서 제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관장합니다. 학교와 현장을 찾아 진행하는 문화사업(공연··이벤트 제외)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경전문기자로서 생태·역사 부문 취재도 합니다. 전화는 010-2926-3543입니다. 고맙습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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