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투쟁 10주년 문화제 "찬반 이웃 간 갈등 맘 아파…사이좋던 때로 돌아가야지"

사회자의 재치 넘치는 진행에 손뼉을 치며 웃던 사람들이 숨죽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 할매들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70, 80살 먹은 할매들이 무슨 죄라고…. 돈 더 받으려고 싸우는 거 아입니다. 우리 생존권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합니까", "내 생존권 지킬라꼬 시작했습니다. 이 골짝 저 골짝 고생한 거 생각하믄 눈물이 다 나네요".

지난 26일 오후 밀양시 삼문동 밀양문화체육회관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웃고 울며 함께 연대의 정을 나눴다.

행사에 참석한 고정마을 '매화댁' 김모(66) 씨는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식사를 준비하고 오는 길이었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2층 좌석 1열에 앉은 김 씨는 지난 10년을 다시 떠올렸다. "새벽 깜깜한 밤에 109번 송전탑 공사장에 오르다 경찰에 잡히고, 앞이 껌껌하이 안 보여서 주민들끼리 서로 다리 잡아 댕기고. 바지가 검은색이라 경찰인 줄 알고 잡았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주년 기념 문화제가 26일 오후 6시 밀양 삼문동 문화체육회관에서 열렸다. 주민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10년을 기억하는 공연과 토크쇼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10년 투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형제처럼 지내던 이웃 주민 간에 골이 생긴 일만큼 가슴 아픈 일은 또 없다. 김 씨는 "고향인 매화마을에서 23살 때 고정마을로 시집와서 43년을 살았다. 이웃끼리 형제처럼 지내고 참 우애가 좋았다"며 "송전탑 이후 합의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들 간 갈등이 격해졌고 이젠 서로 말도 안 한다"고 아쉬워했다.

김 씨 소원은 다른 게 없다. 송전탑이 없던 10년 전처럼 이웃들과 사이 좋게 평온한 삶을 사는 것뿐이다. 김 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세금 하나 안 낸 적 없다. 그냥 옛날처럼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 저 송전탑 뽑아내는 게 소원이지 다른 소원은 없다"고 전했다.

2004년 김해에서 고정리에 들어와 살게 된 안병수(65) 씨도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 길 말고 갈 데가 없으면 가도 좋은데 바른 길로 가지 않고 우회하니까 지적하는 것”이라며 “수도권 전력 수급 계획이 없는 지금 필요없는 송전탑은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제를 연 밀양 765㎸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투쟁을 이어온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상을 전달했다. ‘가리늦가 불붙어 활활 타오르다 상(동화전마을)’, ‘작은 고추가 맵다 상(용회마을)’, ‘질긴 놈이 이긴다 상(골안마을)’, ‘소리 없이 강한 할매 상(도곡마을)’ 등 받는 이, 지켜보는 이 모두 즐거운 시상이었다. 이날 ‘고통을 딛고 우뚝 일어서다 상’을 대표로 받은 평밭마을 이남우(72) 씨는 소감으로 “상은 들지 못할 정도로 무겁지만 마음은 창공을 날아갈 만큼 가볍다”는 말을 남겨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단일 국책사업 최장·최대 저항 사건으로, 아직 193가구 300여 명 주민들은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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