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일 열린 1차 청문회…언론 보도, 단편적 내용뿐 소수 인터넷 방송만 생중계
국민 시야에서 멀어진 사이, 증인 답변 등 '총체적 무성의' 답답한 유가족 눈물만 남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가 지난 14일에서 16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됐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8개월 만에 이뤄진 첫 공개 조사였습니다. 보통 TV나 신문으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은 "그런 걸 했었나?" 의아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청문회는 전국민적인 관심 사안이고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것이지만,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을 통한 TV 중계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소수 인터넷 방송만이 생중계를 하느라 애를 썼지요. <팩트TV>와 <오마이TV>,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4·16TV> 입니다.

"반면 14일과 15일 청문회 시작부터 끝까지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팩트TV 사례는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시민의 주요 관심 대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팩트TV 관계자는 '세월호 청문회 생중계에 대한 관심은 14만 명이 모였던 지난 1차 민중총궐기(11월14일)에 대한 관심과 맞먹는 수준'이라며 '생중계뿐만 아니라 다시 보기도 관심이 뜨거웠다'고 귀띔했다." (16일 미디어오늘 보도)

지난 14∼16일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가 열렸다. 15일 희생자 유가족이 위원 질의에 대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의 답변을 들은 후 답답함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지역 일간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오늘> 보도를 보면 지난 16일 세월호 청문회가 끝나고 다음 날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보도한 곳은 국민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뿐이네요. 물론 다른 신문들도 중간 중간 청문회 내용을 보도하기는 했습니다만 대부분 단편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유일하게 한겨레는 이 소식을 1면에 배치했다. 한겨레는 청문회의 성과에 아쉬움을 표하며 "세월호 청문회에서 진상규명이 미흡할 것이라는 점은 특조위 출범 때부터 예견됐다"며 "출범 당시 특조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제외됐고 이후에도 시행령과 예산문제 등으로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해 특조위가 실질적인 조사를 벌일 시간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17일 미디어오늘 보도)

언론에서 잘 보지 못한 씁쓸한 사실은 또 있습니다. 우선 이번 청문회는 국회에서 열리지 않았습니다. 청문회는 서울시 중구에 있는 YWCA 회관 4층 대강당에서 진행됐습니다. 특조위는 애초 국회 회의장을 쓰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 사무처가 내부 규정상 불가하다며 거절했습니다.

14일 개회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결국 특조위는 YWCA회관 4층 대강당을 빌려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공간 사용료를 지불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가 304명인데 방청석은 150석뿐이었습니다. 유족들과 취재진이 모인 방청석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비좁아 보였습니다. 유족들은 방청을 위해 오전 6시부터 줄을 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22일 경향신문 보도)

이번 청문회 자리에는 청문위원석으로 17개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특조위 조사위원 17명의 몫입니다. 하지만 청문회 내내 5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이헌 특조위 부위원장을 포함한 여당 추천 위원 5명이 불참한 거지요. 이들 가운데 이 부위원장을 뺀 4명은 특조위가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포함한 청와대의 대응을 조사하기로 하자 사퇴 의사를 밝혔고요. 그런데 불참 특조위원 중 일부는 청문회 기간에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더군요.

"그렇다면 여전히 특조위원 신분인 이들 4명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세월호 청문회 이틀째인 지난 15일 오전. 취재진은 경남 김해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걸어나오는 황전원 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을 만났다. (중략) 같은 날 오후 부산 사하구청 앞. 구청이 주관한 한 행사장에서는 석동현 위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7일 뉴스타파 보도)

청문회에 불참한 여당 측 고영주·차기환 위원 자리.

이번 세월호 1차 청문회 목표는 참사 당시 정부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해양경찰청 핵심 관계자와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등 34명이 증인으로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증인들의 대답과 태도가 아주 실망스러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증인들의 대답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한숨과 항의를 쏟아냈습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생존자이자 참사 당시 목숨을 걸고 20여 명의 학생을 구해 '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 씨는 방청 도중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몰랐다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14~16일 3일간의 청문회를 뒤돌아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증인들의 답변이다."(17일 헤럴드경제 기자수첩)

김 전 해양경찰청장 답변에 항의하는 유가족.

"세월호 사고 당일, 현장 관할서의 최고 책임자였던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은 청문회 내내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이 어떤 자격으로 청문회에 나왔는지, 왜 여기에 나왔는지조차 잘 모르는 듯했다. 심지어 신문을 맡았던 이호중 위원과의 질의응답 순서에 가서는 청문회를 이 위원과의 '개인 대 개인', 자존심 싸움으로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21일 SBS 취재파일)

이런저런 씁쓸한 사실에도 이번 세월호 1차 청문회는 '일부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고, 새로운 의혹이 드러나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후에 한 번 더 정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년에 열릴 2차 청문회는 또 얼마나 언론의 외면을 받을 것인지 단단히 지켜보아야 할 듯합니다.

15일 김석균(가운데) 전 해양경찰청장이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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