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소기업 사원모집 화제, 면세점 사업 진출 신뢰도↓ 공작기계부문 매각에 주목

재계 순위 12위인 두산그룹이 총체적 굴욕에 빠졌다.

경기도 용인에 본사가 있는 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인 넥스턴이 다음달 31일까지 접수하는 사원모집 공지에서 두산인프라코어 출신을 우대한다고 밝히면서 온라인에서 화제다. 올들어 4번째 명예퇴직을 접수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대졸 신입사원까지 명퇴 신청 대상에 포함하면서 거센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자 박용만 회장이 직접 나서서 신입사원은 명퇴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지만 20대 말~30대 초반 경력 3~4년 차 사원들은 더 딱한 처지라는 동정론까지 퍼지고 있다.

기업의 명예퇴직은 이제 일상이 될 정도로 흔한데도 두산인프라코어 명예퇴직이 이처럼 눈총을 받은 것은 그간 두산그룹이 보여온 이미지 메이킹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사람이 미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이미지 광고를 해왔다. 그랬던 그룹이 경영 위기가 오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강압적이고 비상식적인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게 됐다.

이런 굴욕을 불러온 것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그동안 캐시카우(수익창출원) 구실을 해왔고, 지금도 잘나가는 공작기계부문을 따로 떼어내 팔아야 할 처지에까지 내몰렸다. 현재 진행 중인 공작기계부문 입찰에 3곳 정도가 참여하고 있는데, 매매가격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 측에서는 최소한 2조 원은 받으려 하지만, 매수 측에서는 넉넉하게 쳐준다 하더라도 1조 5000억 원 이상은 곤란하다고 해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겪는 경영 위기를 전적으로 경영 잘못으로만 돌리기에는 외부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는데다 그에 따른 건설기계 시장이 도대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건설시장 선점을 위해 진출한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는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못하고 있으며 미국 소형 건설장비 시장에서 잘나간다고는 하지만 밥캣 역시 인수 비용을 따져보면 성공적인 인수는 아니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시작된 이런 굴욕의 근원을 파고들어가보면 두산그룹의 전략 미스로 이어진다.

두산그룹은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기업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주로 경공업과 소비재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었다. 코카콜라, 한국3M, OB맥주, 처음처럼, 버거킹, KFC 등 익숙한 소비재를 두산이 생산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차례차례 이들 기업을 매각하고 2000년 당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서 이른바 '경소단박' 산업에서 '중후장대' 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꿨다.

문제는 이처럼 변신에 성공하고 안착하는 것으로 비쳤던 두산그룹이 최근 돌연히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중후장대 산업 특성상 현금회전이 느린 단점을 보완하려는 것으로 읽히지만 경소단박 산업에 다시 뛰어드는 모습은 기업 신뢰도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두산그룹으로서는 현재 시급한 게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부문을 성공적으로 매각하는 일이다. 1조~2조 원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매각 대금은 당장 급한 불을 끄고 숨고르기를 할 수 있을 정도 여유를 줄 것이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일시적인 '굴욕'은 큰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부랑아 가랑이 사이를 기는 굴욕을 참아냈던 한신처럼 두산그룹도 지역 경제나 한국경제를 위해서라도 와신상담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