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 고성군 고성읍 남내마을 최금용 이장

지방 행정 최일선에서 주민복리 증진과 묵묵히 주민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마을 이장. 고성읍에는 이런 역할을 최장기간 하는 이장이 있다. 고성읍 남내마을 최금용(75) 이장이다.

소가야(小伽耶)를 세운 말로왕(末露王)은 도읍지인 지금의 고성읍 지역에 돌성(石城)을 쌓았는데 처음 구조는 둘레가 3524척(尺) 높이가 약 15척(尺)이었다고 한다. 성에는 세 개의 출입문이 있어 그 위치에 따라 동문, 서문, 남문이라 불렀는데 남내(南內)마을 이름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언제부터 우리 선조가 터를 닦았는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선사시대부터라는 것을 고성읍 동외리에 있는 패총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상공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곳 주민들도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역적 특성에 맞춰 서서히 상업지역으로 변하게 됐다.

고성읍 중심부에 있는 남내마을은 185가구에 411명(남자 196명, 여자 215명)이 살고 있으며 최 이장은 지난 1972년부터 43년째 마을 이장직을 맡고 있다. 그가 이렇게 오랜 세월 이장을 하는 이유는 매일 아침 마을을 둘러보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보살피는 데 최 이장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반평생 이장직을 맡고 있는 최금용 이장은 "앞으로도 마을 화합과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 말한다.

또 최 이장은 마을 대소사를 직접 챙기며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일은 궂은 일도 가리지 않고 주민 목소리를 기회 있을 때마다 행정에 전달한다. 더구나 공사 구분을 명확히 하는 성품이라 주민들의 신뢰가 두텁다.

특히 주민숙원사업이던 마을회관과 경로당 신축 사업을 행정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2009년에 준공했고, 2012년에는 동외광장 공공 디자인 개선사업을 마무리 지어 주민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가 마을 구석구석 잘 다닐 수 있어야 마을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을 안길 확장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최 이장은 이뿐만 아니라 33년간 이장수당을 받아서 학생들에게 1년에 10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캠페인에 금 10돈을 기부했고 지난 2013년에는 고성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베트남 전통의상과 모자를 기증하는 등 기부천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최 이장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지난 40여 년 동안 군민체육대회 축구 경기 해설을 맡아 군민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한 것으로 그의 해설은 군민체육대회 백미로 꼽히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BBS 경남지회 이사, 고성지회 사무국장을 39년째 맡아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다.

최 이장은 특이한 기록도 갖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한 청룡부대, 십자성부대, 맹호부대, 백구부대에 위문편지 6000통을 보내 지난 1969년 9월 22일 한 서울지역 신문에 전면 보도되기도 했고,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 위문편지왕 상을 받기도 하는 등 그의 생활 자체가 봉사로 알려졌다.

최 이장은 "처음 이장이 됐을 때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했지만 마을 일을 내 집안일이라 생각하고 하다 보니 이렇게 반평생 마을 일을 하고 있다"며 "43년째 연임하는 것은 그만큼 마을 주민들이 이장을 믿고 인정해 줘 가능한 것으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봉사와 열정을 쏟아 마을이 화합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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