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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의 사심가득 인터뷰] (11) 조각가 강동현

용접하고 두드리고 갈고 자르고 고되지만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강동현(39·창원시) 작가는 내가 아는 젊은 작가들 중 꽤 묵직한 존재감이 있는 친구다. 그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자리를 잡으면 그를 중심으로 왠지 모를 안정감이 생겨난다. 실제로 강 작가는 지역 젊은 작가들에게 우뚝한 큰형님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주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생각보다 깔끔했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고는 저렇게 만들려면 작업실이 쇳가루와 작업도구로 어수선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나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청소를 한 번 했단다. 그런 청소도 페인트가 온통 벗겨진 바닥이며 먼지 가득한 작업대와 낡은 공구 같은 작업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 듯했다. 그 흔적들 위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앉은 그와 마주 앉았다.

강동현 작가의 미완성작. 가만히 지켜보다가 문득 다른 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 무엇보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네요.

"요즘 쓰는 재료가 스테인리스스틸 봉인데요. 먼저 드로잉을 그리고, 흙으로 모형을 만들어요. 충분히 이미지를 머리에 각인한 다음에 용접을 하기 시작하죠. 캐스팅이 아니고 용접을 한 다음 망치로 두드려서 면을 고르죠. 앞뒷면 다 되고 나면 잘라낼 건 잘라내고 다시 용접하고 그라인더로 갈고, 표면을 시너로 다 닦아내고 색을 칠하죠. 공정이 되게 많아요."

- 아이고, 보통 작업이 아니네요. 그렇게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어찌되는 건가요.

"작업 중반 정도 가면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실험작 같으면 그런 게 더 많죠. 만들고 보면 느낌은 좋은데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 그런 것들은 그냥 작업실에 보관해 두죠. 가끔 쳐다보고 그러다가 요게 여기 들어가면 되겠다 하고 갑자기 떠올라요. 그래서 우리 같은 작가는 조그만 소품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어요."

- 굳이 스테인리스봉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뭔가요?

"지금 작업실이 주택가라 거친 작업은 엄두가 안나요. 현재 환경에서는 스테인리스스틸 봉으로 용접하고 면을 만들고 하는 작업이 가장 제 색깔에 맞는 것 같아요. 주변 환경에 맞춰서 작업을 하는 셈이지요. 지금도 야외나 공장단지 이쪽으로 작업실 구하려고는 하고 있어요. 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 이전에도 철로 작업을 하셨죠?

"제 성격이 빨리 결과물이 보여야 하고 수정도 빨리 되어야 하거든요. 나무나 돌은 한 번 깎아내면 끝이잖아요. 제 작업 스타일이랄까 성향도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딱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런 이미지를 이렇게 만들 것이라는 큰 형태만 염두에 두고 실제 만들면서 구체적인 부분을 생각해요."

강동현 작가와 작업실. /강대중

- 고성이 고향이에요? 고성에서 미술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미술이나 음악은 그냥 '빌어먹는' 직업이에요. 심지어 '집이 가난하면 나가서 돈 벌 생각을 할낀데, 니는 어찌 그런 일을 하고 있노' 그러는 분들도 계세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어요. 근데 아무리 잘 그려도 미술학원 다니는 아이들이랑은 표현 기법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무척 궁금했는데 경제 여건이 안 되니까 못 다녔어요. 공고를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거 가서 뭐할낀데'라고 묻더라고요. '빨리 돈 벌라고 그런다'니까 '니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고마 인문계 가라' 그러셨어요. 그래서 고성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이때가 중요한 갈림길이었어요. 만약에 제가 공고에 갔다면 지금처럼 조각가가 되지는 않았겠죠.

생각해보면 집은 가난해도 부모님께서 저를 자유롭게 키우셨어요. 그래서 미술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고성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제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시죠. 하지만, 제가 작업하는 거 보시면 마음 아파해요.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돈은 안 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니까."

- 작품을 언제부터 대외적으로 전시하기 시작했죠?

"대학교 다니면서부터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지금처럼 아트페어나 초대전, 기획전 이런 게 거의 없었어요. 오로지 공모전이에요. 1학년 때부터 공모전 위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때 서울신문사에서 한 서울문화조각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군대에 갔죠.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공모전에 매달리기 시작했죠. 그때는 공모전이 전부였어요. 다른 돌파구가 없었어요."

강동현 작 '저고리'(2015)

- 하면서 힘들 때도 많았겠어요.

"대학원 다니면서 생계 때문에 잠시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다른 일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졸업하면서 현실적인 부분에서 부딪치기 시작한 거죠. 그래도 조각에서 손을 놓고 있진 않았어요.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니 손을 못 놓겠더라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그동안 재밌기도 했고 안 좋은 일도 있고 그랬는데 크게 보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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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국장석 기자입니다. 경남의 산 등 공공 기획. 15면/20면 지역민 참여 보도, 제휴 뉴스. 가끔 자체 기획.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