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올해로 꼬박 10년을 맞았다. 밀양 사태가 널리 알려진 건 주민의 분신이었지만 2005년 상동면 주민들의 시위가 시발점이었다. 지역사회가 단일 의제를 놓고 이렇게 오랫동안 투쟁한 것은 다른 예가 없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인적 피해를 비롯한 주민들의 희생과, 공권력 동원에서도 기록적이다. 2명의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383명이 입건됐으며, 2013년 이후 해마다 38만 명의 경찰력이 투입됐다. 보상비를 통한 회유책으로 지역 공동체에 금이 갔으며,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치료가 필요한 고강도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의학적 보고도 나왔다.

밀양 주민들의 희생을 동반한 송전탑 반대 운동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은 지대하다. 원전의 위험성을 새삼 경고한 것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개념조차 생소하던 탈핵 운동을 급성장시켰다.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밀양은 탈핵 운동의 집결지로 거듭났다. 환경권, 생존권, 개인의 행복추구권, 수도권 주민의 편의를 위한 지역민의 희생 등에 대한 의제도 불러일으켰다. 밀양 투쟁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정부는 2차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당시 원전 비중을 26.4%에서 27%로 높이기로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세운 1차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당시 원전 비중을 41%로 확대하기로 계획한 것에 비하면 수치가 훨씬 떨어진 것이다. 밀양 주민들의 투쟁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조금이나마 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마무리됐지만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가 그토록 무리하게 송전탑 건설에 집착한 이유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혹이다. 진상 규명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정부가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을 원활히 할 목적으로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였다는 의혹에 대해서 반드시 규명이 필요하다. 전원개발촉진법 등 밀양 사태를 낳게 한 악법의 폐기도 필요하다. 송전탑 건설을 저지하다 범법자로 몰린 주민들의 명예회복과, 갈라진 지역공동체의 회복도 과제다. 정부의 원전 정책은 제2, 제3의 밀양을 예고하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만이 이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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