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22) 합천영상테마파크

합천영상테마파크(합천군 합천읍)로 떠난 이유는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다. 도내 곳곳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일본식 가옥을 자주 만났다. 해방 이후 형성됐다는 골목길과 집도 지나치면서 그 시대를 떠올렸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에 주말이 즐거워지니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웠다.

합천영상테마파크에 들어섰다. 아이들을 겨냥한 놀이시설과 거대한 주차장을 갖춘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관광지'였다. 저마다 다른 인상을 받겠지만 간질간질해진 가슴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는 아쉬웠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어서….

어서 발길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노면 전차 두 대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멈춰 있는 전차에 사람들이 탔다 내렸다 한다. 철도를 따라 걸으면 옛 서울, 경성의 모습이 펼쳐진다. 192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서울 모습을 재현한 세트장이다. 소공동 골목, 종로거리, 서울역으로 통하는 철교 주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2004년 장동건·원빈이 출연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하려고 지었고 드라마 <서울 1945>를 촬영하려고 대대적인 공사를 거쳤다.

큰길로 가지 않고 골목으로 빠졌다. 작은 상점들이 궁금했다. '전파상', '테레비 라듸오 수리'를 따라 읽으며 닫힌 문을 살짝 열어본다. 안은 텅텅 비어 있다. 괜스레 벽을 두드렸다. 가벼운 소리가 난다. 나무로 덧대어진 일본식 건물에서부터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욕실 타일로 멋을 낸 가게, 빨간 벽돌로 외관을 꾸민 곳까지 가지각색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철도가 놓인 길이 다시 나온다. 붉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는데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자', '전 인민이 전쟁 승리를 위하여'라고 적혀있다. 종로경찰서에는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 김일성이 얼굴도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웬일인가 싶었더니 영화 <인천상륙작전> 촬영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된 X-RAY 첩보작전과 팔미도 작전을 그린 전쟁 영화로 배우 이정재·이범수가 출연한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서 영화 촬영으로 부분 통제가 되고 있다는 안내판을 보았다.

수도경찰청, 종로경찰서, 혜민병원을 지나니 경성역이다. 인증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다. 철교가 보인다. 사람들이 웅성댄다. 원구단 앞이 인산인해다. 영화 촬영을 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실제 영상을 찍는 모습을 구경하고 유명 배우를 볼 수 있을까 기대에 차있다. "레디 액션" 총소리가 난다.

영화 촬영장에서 벗어나 철교 옆 골목길에 들어섰다. '타이어 빵구'라고 적어 놓은 자전거 수리점, 메밀국수와 막국수가 자신 있는지 문에 커다랗게 쓰인 국숫집, 약국, 미장원, 다방이 나온다. 반대편 골목으로 빠지면 민박을 놓는 집들이 가파른 계단 위에 있다. 지금도 하늘과 가까운 동네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끝 집 대문 앞에 서서 집들을 내려다보았다. 어지럽혀진 마당, 닫힌 창문들. 세트장이지만 누군가 살았던 것만 같다.

맨 처음 가호역에서 곧바로 골목으로 빠지면서 보지 못했던 반도호텔과 경성라디오 방송국을 구경하고 소공동 거리, 적산가옥, 서민촌을 차례로 둘러봤다.

합천영상테마파크 팸플릿에는 영화 <포화속으로>, 드라마 <각시탈>을 비롯해 <서울 1945>, <에덴의 동쪽>, <마이웨이> 세트장임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은 듯하다. 오히려 간판 글씨체를 보고, 양화점에 진열된 신발을 보고 한마디씩 던진다. 나무로 창을 낸 미닫이문, 시멘트 블록을 그대로 놓은 담벼락을 만지며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는 어르신과 어디서 봤다며 호들갑을 떠는 젊은이들도 만났다.

상실의 시대. 비극을 겪고 험난한 타향살이를 했던 사람들. 지긋지긋했을 가난. 낯선 외국 문화들. 그럼에도 이때를 동경하고 황금기로 여기는 사람들. '나 혼자 간다' 22편이자 마지막 여정은 가볼 수 없는 시간, 그래서 아름다울 거라고 여기는 그 시절을 거닐며 오늘의 나를 만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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