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럽 도시의 주요한 근대 경관을 만들고 있는 동상 문화는 19세기 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수입됐다. 해방공간에서 제작된 이승만의 동상은 시민들에게 끌어내려졌고 이어진 정권은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진해와 통영 남망산공원, 부산 용두산공원 등에 설치했다. 1966년 관제성 조직으로 설립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1972년까지 15점의 동상을 만들었지만, 이 가운데 세종로 이순신 동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방치되고 있다.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상, 남산 터널 인근으로 내쫓긴 횃불 든 유관순상, 서울어린이대공원 뒤편으로 옮겨간 을지문덕상 등 많은 동상이 밀려나거나 잊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임에도 2000년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공공미술지원 프로젝트로 동상들은 만들어지고 있다.

함안군 나들목의 이방실 장군 승마상, 의령군의 홍의장군, 진주시 김시민 장군, 창원시의 최윤덕 장상 승마상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제 통영의 랜드마크가 되게 한다던 상징탑은 '상징조형물'로 변경되더니 이순신 장군과 수하 장수들의 동상을 제작하여 마당에 배치하게 되었다. 역시 근대에 이식된 부박한 동상문화들처럼 거액을 들여 만들면서도 단기간에 뚝딱 세워진다.

그리고 다른 동상들 제작이 그랬듯이 판에 박힌 영웅 조형물 틀에 갇혀 있고, 짧은 공기에 맞춰 급조되며, 대상 선정이나 건립 방향 등에서 미학적인 공론화가 미흡하다는 점 등으로 비판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도 20억 원이 넘는 비용에도 제작 기간은 4~5개월에 불과했다. 길쭉한 광장에 지나치게 큰 위압적 덩치로 이순신 동상 뒤편에 이상하게 배치되었고, 1959년 친일작가 김경승이 제작한 안중근 동상도 훼손에 따라 철거하고 4개월 만에 새 동상으로 급조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폭넓은 의견 수렴은 생략됐다.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에서 영웅적 위인의 동상 건립 유행은 사라지는 추세다. 대신 도서관·강당 등 대형 공공시설에 위인 이름을 붙이거나 인물상이 배제된 개념적, 추상적 형식의 기념 조형물을 만드는 쪽으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우리도 이제 예술적 조형방식이나 작가 선정 등에서 충분한 사전 논의와 제작 시간을 가지고 공론의 장에서 논의해야 한다. 이때 논의의 핵심은 공공성과 공익성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설치를 서두르고 있는 한산대첩 병선마당 상징조형물이 지역 랜드마크로서 상징성이 담겨야 함에도 그냥 넓은 마당에 사람 눈높이 군상들을 아주 쉬운 방법으로 늘어놓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토론회에서 차라리 비워두자는 통영예술인들 의견에 격하게 공감한다.

과연 이 군상들이 설립목적인 통영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가? 미래지향적인 역사성, 상징성, 예술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이 군상들이 과연 40억 원이나 들여서 제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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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의전당 상징조형물은 국제 공모를 통해서 국내 작품 92점과 해외 작품 14점 등 106점이 심사에 올랐고, 이 가운데서 '여자-새-변신(신기루)'이 선정, 설치됐다. 이 화제의 작품 제작비로는 통영의 10분의 1도 안되는 총 3억 9200만 원이 들었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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