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심한 사람아. 이렇게 훌쩍 가면 어떡해.”

경희대 김희규 감독의 빈소가 차려진 7일 경희의료원. 이날 새벽 비보를 접하고 달려온 배구인들은 아까운 재목을 잃은 비통함에 목이 메었다.

지난해 9월 간암 판정을 받고 남몰래 투병해온 김 감독이 불쑥 벤치에 나와 선수들을 지휘했던 것이 불과 한 달전의 일.

그래서인지 배구계 선·후배와 동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잇지 못했다. 향년 53세.

최강 한양대를 꺾고 꿈에 그리던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천하의 명장도 암앞에서는 보통 사람과 다름 없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숨진 김 감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덕장으로 평가된다. 김 감독이 남긴 대표적인 업적이 경희대의 슈퍼리그 대학부 우승. 한양대의 물량공세로 공들였던 손석범(현 LG화재)을 빼앗겼던 김 감독은 99년 윤관열과 박석윤을 대학 최강의 좌·우 쌍포로 키워 이경수 손석범 이영택 백승헌이 버틴 무적의 한양대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91년 재창단 때 감독을 맡은 지 8년만의 대학부 제패였다.

김 감독이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선수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선수 스카우트에서 학교측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김 감독은 정상을 향한 과정에서 다섯식구가 오붓하게 살던 아파트를 팔아 전셋집에서 사는 등 남몰래 마음고생을 해야했다.

김 감독은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갔지만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이룬 행운아이기도 하다.

또 개인적으로 집안 종손인 그는 딸 둘만 두다가 그는 오십줄에 접어든 97년에 늦둥이 아들(정호)을 봐 `조상 볼 면목'을 세웠고 보기도 했고 98년 난생 처음으로 주니어대표팀 감독으로 발탁,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고 이듬해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김 감독 특유의 너털웃음 속에 담긴 지략과 남다른 배구사랑은 많은 한국배구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배구인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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