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축산업, 신뢰의 가치사슬이 해법] (2) 국내 동물복지 현주소

◇돼지에게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박하재홍 지음)는 동물복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지능이 높고 지루한 걸 못 참는' 돼지 복지를 위해 2003년 유럽연합은 회원국의 모든 돼지에게 장난감을 제공하도록 조치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양돈 국가로 유명한 덴마크는 장난감을 제공하라는 유럽연합의 규정은 물론이고, 진흙 목욕 수렁 제공이라는 규정까지 덧붙이고 있다.

한국 축산업에서도 동물복지는 화두다. 소비자도 어렵지 않게 '동물복지 인증'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 동물복지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2007년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동물복지가 주요 의제로 채택되면서부터다. 당시 EU는 우리나라 축산업의 밀집사육 방식과 도축 과정을 언급하면서 동물복지가 보장되지 않은 축산물을 교역하기가 곤란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2010년, 2011년 구제역 발생으로 소비자들의 동물복지 인식과 선호도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덴마크 유기농 농장에서는 10㏊ 초지에 불과 700마리 돼지만 사육되고 있다. /공동기획취재단

이에 농식품부는 2012년 산란계를 시작으로 '동물복지 축산농가 인증제'를 시행해 2013년 양돈, 2014년 육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물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개념보다 악성 질병 발생에 대비한 사육방식인 셈이다. 현재 전국 75농가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이 중 69농가는 산란계 농장, 육계 사육농가 2곳, 돼지사육농가 4곳이다.

◇동물복지의 허울 = 산업에서 동물복지를 실현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결국, 유럽이든 한국이든 축산업에서 동물복지는 인간 중심적인 개념이다. 유럽은 소비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고품질 육류를 제공하고자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가축의 기본적인 습성과 본능을 최대한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면 우리나라는 알파로 동물복지 축산의 경제성에 주목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의 달걀은 일반 농장 달걀보다 2~3배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2012년 농촌진흥청은 공장식 밀집사육 농장보다 동물복지 농장이 농가의 주머니를 훨씬 두둑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이를 인증했다.

개념 정리는 차치하더라도 국내 축산업에서 동물복지 농장 인증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국내 축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럽을 본뜬 기준은 대다수 농가에는 '그림의 떡'이다. 인증을 받기까지 농장 관리자의 의무사항이 까다로워 인증 취득을 포기하는 농가도 적지 않다. 시설 확충비 등 투자 비용이 높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돈산업 생산비는 덴마크의 1.5배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비용을 늘리면 품질이 좋아도 가격경쟁력에서 글로벌시장에서 도태된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축산업에 회의적인 한 축산 전문가는 "시설보다 농장주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아무리 좋은 시설과 제도라도 실천하는 사람의 자세가 변하지 않으면 위생 수준과 품질이 향상될 수 없다는 것.

그는 "돼지 1200마리를 키우는 산청의 한 농가는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다. 시설은 좋지 않지만 농장 안이 그렇게 깨끗할 수 없다. 농장 주인이 부르면 돼지가 걸어오는 모습에 놀랐다. 이런 농가가 전국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덴마크 유기농 농장 = 일찌감치 동물복지에 눈을 뜬 덴마크 가축 사육 환경은 상향평준화돼 있다. 그중에서도 유기농 가축 농장이 각광받는 추세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한적한 엘민드 시골마을. 취재차 찾은 덴마크 유기농 양돈농가 입구는 우리나라 시골 축사와 다를 바 없이 농기계 보관창고, 실내 축사가 있다. 하지만 축사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끝도 보이지 않는 푸른 풀밭에 군데군데 분홍색 돼지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어미돼지 한 마리에 10여 마리의 새끼 돼지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어미돼지는 농장주를 둘러싼 취재기자들이 궁금한지 주위를 뱅뱅 돈다.

이 농장의 부지는 총 73㏊(약 25만 평). 이 중 사료 재배지로 63㏊를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10㏊(3만 평)의 초지에서 불과 700마리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이 넓은 목장은 라우스 파르소 라우센 씨 부부 단 둘이 운영하고 있다.

초원 이곳저곳에는 큰 돼지 한 마리와 새끼 돼지가 쉬고 잠을 잘 수 있는 소형 축사가 있다. 칸막이 없는 개방형으로, 바닥에 톱밥이 깔린 작은 축사는 '후드(HOOD)'라고 불린다. 이 집은 한마디로 자연공간에 놓인 모유실 겸 주거지다.

이곳 새끼 돼지들은 태어나면 항체를 높이고자 어미로부터 7주간 모유를 먹으면서 자란다. 송곳니를 자르지 않고, 꼬리 또한 자르지 않는다. 특히,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도 제한받게 되며, 사육기간(출하 전) 총 3번 이상의 의학접종이 이뤄지면 유기농 돼지로 인정받지 못한다. 씨 돈(새끼 낳는 돼지)은 건강한 새끼를 낳도록 3년간 총 6번의 번식 후 도태된다.

이곳에서 유럽식 동물복지, 덴마크식 오르가닉(Organic·유기농) 농장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이곳 돼지들은 6개월간 사육돼 120㎏이 되면 출하가 이뤄진다. 도축된 유기농 돼지고기는 ㎏당 일반돼지(9크로네-덴마크 화폐 단위, 1크로네 한화 164원)에 비해 3배가 넘는 30크로네를 받는다. 현재, 덴마크의 유기농 돼지 사육농가는 총 60곳으로, 전체 도축되는 돼지고기 중 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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