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6편

순례길에서 이틀째. 어제도 잠을 설쳤는데 오늘도 여전히 푹 자지를 못했어요. 순례길에서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잠이 안 오는 일이었어요.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쾌∼청!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피레네의 아침이 매우 아름답네요. 이곳 오리슨이 비싸고 지루하긴 해도 이런 맛에 여기에 묵어들 가는가 봐요. 멀리 구름인지 안개인지에 휩싸인 산들 때문에 꿈속에서 헤매는 것 같았어요. 주어진 것으로 든든히 식사를 하고 어제 주문해 놓은 샌드위치를 받아 론세스바예스를 향해 출발합니다.

날씨와 풍경이 어우러져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네요. 정말 말로는 다 표현하기가 어렵고 어디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자꾸 꺼내보지만 한계를 느끼고 일단 마음에 담으려고 자주 멈춰 서서 뒤돌아보며 이 모든 것들을 맘속에 새겨봅니다. 길 곳곳에 순례하다 죽은 순례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오리슨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 풍경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다가 이곳에서 숨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았어요. 나도 여기 카미노에 오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 또 죽으면 어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는 건데'라며 죽을 각오로 여길 왔었잖아요. '이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며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왔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을 위해 저절로 기도가 되더라고요.

등 뒤의 배낭은 점점 돌덩이로 변하고 발에선 불이 나고 태양은 작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타난 이동식 간이바(bar), 반가웠습니다! 여기에서 바나나랑 달걀을 사먹으며 신발을 벗고 발에 바람을 쐬어 주고 나니 좀 살 것 같았어요. 피레네가 매우 아름다워 여기에서 그냥 계속 앉아 쉬고 싶었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일어났어요. 조금 걷다 보니 롤랑의 샘(프랑스의 무훈시 중 최고·최대 걸작,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롤랑이 마셨다는 샘)이 나오네요. 여기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이 나누어지는 곳이에요. 이제부턴 스페인 땅이랍니다.

샘을 지나 걷다가 밤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지쳐서 잘 안 넘어갔지만 그래도 힘을 내야 하기에 열심히 먹었어요. 다시 걷기 시작, 시몬이 길옆 그늘에서 누워 쉬고 있는데 너무 편해 보였어요. 얼마 후 피레네를 가로지르는 이 길의 가장 높은 지점인 콜데레푀데르라(Col de Lepoeder, 1410m)가 나타났습니다. 몇몇이 여기서 쉬고 있기에 우리도 잠깐 쉬었어요.

이젠 내리막. 시간은 걸리지만 편하게 도로를 따라가는 길과 시간은 짧지만 힘들고 거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중 우리는 후자를 택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3.6㎞만 가면 된다고 하니 힘을 내서 내려가는데 땅이 질퍽거리고 미끄럽고 우기에 왔으면 정말 더욱 힘들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얼른 숙소에 도착하고 싶은 맘에 쉬지도 않고 내려왔답니다.

순례길에서 만난 성모상

숲을 지나고 나니 저기 중세풍의 수도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반가워라~. 19㎞가 이렇게 멀 줄은 몰랐어요. 겨우 19㎞가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걸을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었고요.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봉사자들이 반겨주었고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수도원 알베르게의 봉사자들은 아주 친절했고 알베르게 또한 깨끗했습니다. 아직 문 여는 시간이 아니라서 배낭을 세워놓고 문 열기를 잠깐 기다렸다가 안내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침대 안내해 주는 봉사자께서 배낭을 들어주시는 거예요. 지고 오느라 힘들었다며 들어주시는 건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완전 감동이었어요. 이곳의 봉사자들은 대부분 카미노를 걸었던 선배들이라서 순례자의 고충을 알기에 이런 배려가 가능한 거였지요.

이렇게 신발을 벗고 잠깐 쉬어갑니다.

봉사자를 따라 올라가 보니 와~~ 엄청나게 큰 알베르게였어요. 난 117번에 배정을 받았지요. 예전부터 쓰던 알베르게가 있는데 성수기에는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 새로 수도원 일부를 고쳐서 몇백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큰 알베르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먼저 배정받은 침대에 짐을 풀고 씻고 빨래를 해서 널어 놓고 침낭도 따끈따끈한 햇볕에 널어놓고 나니 기분이 상쾌~!! 언니랑 바에 가서 맥주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언니는 카미노에 오니 생각이 단순해지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사별한 남편 생각도 많이 나고 아는 동생이 먼 곳으로 이사 간다고 해서 더욱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내 맘이 너무 아팠답니다.

19㎞를 걸어 마침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이곳 성당에서는 매일 8시에 순례자를 위한 축복 미사를 드린답니다. 강제성은 전혀 없어요. 많은 순례자가 종교와 관계없이 미사에 참례를 하고 앞으로의 카미노길을 무사히 걷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답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게 인간이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미사 후엔 순례자들 모두를 앞으로 나오게 해서 축복을 해 주셨어요. 신부님께서 오늘 묵는 사람들의 국적을 일일이 언급해 주시는데 '코리아'라고 호명해 주시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기분 또한 아주 좋더라고요. 오늘은 걷기 시작한 지 첫날이거나 둘째 날인 사람들이 많아 다들 지쳐 있어서 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잠자리에 든 사람들이 많았어요. 나도 9시쯤 귀마개하고 안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요. 

론세스바예스 성당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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