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 요건 채우기 쉽지 않고 소환투표율 확보 힘들어 소환율 3% 불과…현 제도상 주민 직접 민주주의 실현 어려워

지난달 30일 홍준표 도지사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 숫자가 소환투표 요건을 훌쩍 뛰어넘은 36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 숫자는 지난 10월 재·보궐선거로 인해 제외된 사천시와 고성군을 제외한 것이어서 추후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보수·관변단체 주도로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과연 홍준표 도지사와 박종훈 교육감이 소환될 가능성은 얼마나 있을까요? 과거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소환된 단체장 지금까지 '0명' = 2007년 주민소환제가 도입된 이후 단체장이나 지역의원 등을 소환하려는 시도는 총 65차례(아래 표 참조. 홍준표·박종훈 소환 추진은 제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실제 소환투표가 이뤄진 것은 8차례에 그쳤습니다. 소환투표로 갈 확률이 12.3%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8차례도 사실은 '높게' 쳐 준 것입니다. 2007년 12월 12일 화장장 건립 문제로 경기도 하남시장과 시의원 3명에 대해서 소환투표를 했습니다. 같은 날 투표를 했지만 소환대상자가 4명이기 때문에 4건으로 따로 통계에 잡힌 것입니다. 이 같은 경우를 1건으로 묶어 실질적으로 소환투표에 이를 확률은 10.2%(5건/49건)에 불과합니다.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0월 2일 의왕시 주민들이 시장을 소환하려 했으나 청구인 서명 숫자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습니다. 전북 전주시에서는 시장 소환을 무려 4차례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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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준표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30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 제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주민소환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경남도선관위 6층에서 선관위 관계자에게 청구인 서명부를 제출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이렇게 간신히 소환투표에 이른다고 해도 투표 당일 주민의 33.3% 이상이 참가하지 않으면 소환투표가 성사되지 않습니다. 8건의 소환투표 가운데 소환투표가 성사된 것은 딱 2건에 불과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하남시의원 해당지역구 주민들이 소환투표에 참가해 투표율 37.6%로 시의원 2명이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따라서 하남시의원 2명을 제외하고는 아직 역사상 그 누구도 주민에게 소환된 사례가 없습니다. 역대 소환대상자 65명 가운데 2명이 소환됐으니 소환율은 고작 3%에 불과합니다.

*관련기사: 하남시의원 2명 주민소환투표 요건 충족(한겨레)

지금 경남처럼 광역단체장을 소환하려는 시도는 4차례 있었습니다만, 그 가운데 소환투표로 이어진 것은 2009년 5월 13일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소환투표가 유일합니다. 그러나 투표율이 11%에 불과해 소환은 무산되었습니다.

한편 경남에서도 단체장을 소환하려는 시도는 간혹 있었습니다. 2007년 9월, 당시 골프장 유치 문제로 갈등을 겪던 천사령 함양군수를 소환하려 했으나 청구인 서명부조차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11월 엄용수 밀양시장에 대해서도 소환운동이 일었으나 역시 서명부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관련기사: 엄용수 밀양시장 주민소환 투표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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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 "관이 나서야 가능" = 말 나온 김에 주민투표도 살펴봅시다. 지난 9월 22일 진주의료원 주민투표운동본부가 추진한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가 서명 미달로 무산됐습니다. 운동본부는 14만 4387명의 청구인 서명을 받았으나 그 가운데 무려 47.2%가 무효처리돼 주민투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2004년 주민투표제 도입 이후 주민투표는 총 8차례 시행됐습니다. 그 가운데 이번 진주의료원 주민투표운동본부처럼 주민들이 나서서 주민투표를 성사시킨 사례는 딱 2차례에 불과합니다.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지원범위를 둘러싼 주민투표와 2011년 12월, 영주시 평은면사무소 이전 주민투표는 운동본부가 주민의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성사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 2건 중에서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사실상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정말 '순수하게' 주민의 손으로 주민투표를 성사시킨 것은 영주시 평은면사무소 이전 주민투표가 유일하다고 봐야 합니다.

나머지 주민투표 6건은 모두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주민투표를 청구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경남에서는 2012년 10월 17일, 남해 화력발전소 유치 여부를 놓고 진행된 남해군 주민투표가 있습니다. 남해군민 가운데 53.2%가 참여한 주민투표에서 유치반대가 51.5%를 차지해 '화력발전소 유치 백지화'가 결정됐습니다.

*관련기사: 남해화력발전소 유치안 주민투표 결과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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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직접 민주주의' 난제 태산 = 이렇듯 주민들 뜻을 모아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을 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작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에 빠뜨린 더 막막한 일도 있습니다. 2014년 10월 9일 강원 삼척시에서 이뤄진 원자력발전소 건립 찬반 주민투표에서 삼척시민 67.9%가 투표에 참여해 84.9% 주민이 압도적으로 반대표를 던졌습니다만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민투표에는 애초에 정부로부터 승인 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사무'는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의 해석 때문입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같은 큼직한 사업을 '국가사무'라고 해석해 버리고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실 방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되레 주민투표를 추진한 강원도 삼척시장은 지금 정부로부터 '직권남용'으로 고발 당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역시 올해 11월 11일에 진행된 경북 영덕군 원자력발전소 건립 찬반 주민투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민 가운데 32.5%가 투표해 주민투표 요건에 미달했을 뿐더러 이 역시 국가사무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관련기사: 정부 "영덕 주민투표 효력 없다" (연합뉴스)

게다가 주민투표법 7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회계·계약 및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 등 일정한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경상남도 무상급식 문제는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주민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주민소환과 주민투표는 취지와는 달리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도 인구가 적은 시·군이나 읍·면 단위에서는 주민결집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이 일부 가능성이 있지만, 인구가 많은 도시나 광역자치단체에서는 평일에 투표율 33.3%를 넘기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만약 홍준표 도지사나 박종훈 교육감 중 한 사람이라도 주민소환으로 낙마한다면 그야말로 '대사건'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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