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아너소사이어티 아름다운 나눔] (11) 이용진 금정농장 대표

"부유한 집에서 자라서 별 고생 없이 살았어예.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뿐입니더. 그렇다고 뭐 표나게 내세울 것도 없어예. 인터뷰감도 안 되는데…."

지난 5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기부를 약정하면서 53번째 경남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이용진(62) 금정농장 대표. 양산지역 최초의 회원이다. 거창한 일도 아니며 평범한 사람이라 내세울 것도 없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나눔에 대한 생각은 남달랐다.

◇"그냥 뭐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 양산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이용진 대표. 부산시 초량동에서 3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이후 봉래초교를 졸업하고 개성중, 부산상고를 거쳐 부산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출신학교 이력을 보면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수재였거나 특출한 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축산농부가 되는 것을 꿈꿨기 때문이다. 일반인 시각에서 본다면 유별난 꿈일 수밖에 없다.

"부산대 물리학과에 억지로 들어갔지예. 공부를 못했어예. 허허.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농부가 되고 싶었어예. 딱히 왜 농부가 되고자 꿈을 키웠는지 그 계기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더. 가족 친지는 물론 주변에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었어예. 막연한 기대나 향수, 노스탤지어 뭐 이런 거였나? 그냥 끌리더라고예. 허허. 남들도 이해를 못하지예."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진로문제를 두고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군대를 마치고 나니 그때부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과정에서도 갈등을 좀 겪었지예."

◇꿈을 찾아 떠난 길 = 이 대표는 고민 끝에 자신의 꿈을 따르는 길이 옳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축산 농부의 꿈.

"아버지께서 지금 양계장이 있는 이곳 땅을 64년인가에 사 두셨어예. 한 10만㎡(3만 평) 정도 됩니더. 아버지에게 '젊을 때 꼭 해보고 싶다'고 사정을 했습니더. 결국 제 선택을 믿어 주시고 자금도 지원해주시더라고예. 처음 시작한 것은 양계장이 아니라 젖소농장이었습니더. 나중에는 한 54마리까지 늘려나갔습니더. 그런데 운송료 부담 등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아 2년 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게 됐습니더."

결국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그는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하게 된다. 그때는 3년만 하고 다시 추슬러서 농사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축사를 접고 부산에 나와서 현대해상에 들어갔습니더. 그러면서 집사람을 만나서 연애하다 결혼했고예. 아내 이름은 권영귀(59)인데 1980년 제 나이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습니더.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살면서 농부의 꿈은 자꾸 미뤄졌지예. 뜻밖에 직장일도 재미있었고예. 13년 되던 때 차장으로 승진을 했는데, 더 가면 되돌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예. 그래서 1991년 2월 사표부터 냈습니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시던 아버지도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퇴직금 받은 게 한 2000만 원 됐나. 소를 키울 돈은 안 되고 돼지를 키우려 해도 낙동강변이라 허가가 안 난다고 해서 양계장으로 궤도를 수정했습니더. 뭐 닭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지만…. 집을 담보 잡아 대출하고, 모자라는 돈은 어머니에게 사정사정해서 빌렸습니더. 그 담에 곧장 오경농장으로 찾아갔습니더. 양산 상북면에 있는 유명한 산란계 대형농장인데….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가르쳐달라고 졸랐지예. 하나하나 물어보고 또 일도 도와주면서 배웠습니더. 허허."

◇쉽지 않은 현실의 벽 = 1991년 3월 그는 결국 양산시 원동면 원리에서 닭 1만 마리로 양계농장을 시작했다.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말까 발버둥 치는 시기에 양계농업에도 변혁기가 찾아온 겁니더. 산업화 자동화되면서 예전 방식으로는 남는 게 없는 실정이었지예. 번 돈은 아끼고 아껴서 계속 투자하고, 그것을 담보로 또 대출하거나 리스로 시설을 확대해 나갔습니더. 한 10년까지는 정신없이 지냈어예. 돈이 쪼들리다 보니 항상 살얼음판이었지예."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고난이 아니다. 문제는 항상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지난 5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기부를 약정하면서 53번째 경남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이용진 금정농장 대표.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조류인플루엔자(AI)가 뭔지도 잘 몰랐지예. 그런데 2003년인가 양산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습니더. 여기서 한 20㎞ 정도 떨어진 곳인데…. 소비가 급격히 줄고 가격이 폭락하면서 18개월 적자가 계속됐는데 말도 못 합니더. 사룟값 감당은 안 되지, 밤낮으로 방역해야지…. 대출금을 제때 못 갚으니 조합에서 사고처리 하겠다고 하더라고예. 그때는 꿈에서도 돈 빌리러 다니고, 또 어떻게 하면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자면서도 생각을 하고 그랬어예. 허허."

그렇게 18개월 연속 적자 이후 농장은 안정세를 찾았고 그동안 고통을 견뎌낸 '보상'을 받게 된다.

"딱 18개월 어려움을 견디니 달걀값이 예전보다 더 오르면서 18개월 연속 흑자를 냈습니더. 그때는 재미 좀 봤습니더."

이 대표가 운영하는 금정농장은 현재 닭 10만 마리를 키운다. 하루 평균 5만 8000개 달걀이 생산된다. 설립 24년을 맞은 지금 한 해 매출은 20억 원에 이른다. 특히 이 대표는 달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료에서부터 생산, 보존, 유통의 전 단계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해썹(HACCP) 인증과 친환경 무항생제 농장 인증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농협이 선정한 우수 농장이 됐다.

"저희 달걀은 진짜 마음놓고 안전하게 드실 수 있습니더. 우리 식구가 먹는 먹거리라 생각하고 생산하고 있습니더. 당연히 맛도 좋고예. 허허."

◇"그동안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죠" = 이 대표는 지난 5월 20일에는 경남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2012년부터는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농학도를 위해 부산대 농과대학에 매년 1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뭐 거창한 뜻은 없습니더.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예. 저는 남들보다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자랐고, 농장도 주변 지원을 받아서 시작한 거고…. 제가 한 것이라고는 안 망하고 지킨 것 정도뿐이지예. 허허. 그러니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입니더. 특히 부모님 애를 많이 태웠는데…. 이제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그에 대한 보답의 뜻도 있고예. 그런 도움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룬 것 아닙니꺼. 뭐 그 정도입니더."

담백하고 겸손하게, 꾸밈없이 대답했지만 그는 작은 도움들이 모여 더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제가 만약 주변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이만큼 이룰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합니더. 그만큼 없는 사람들은 기회도 얻지 못하고 소외받고 힘들겠지예. 그러니 포기하고, 좌절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고예. 제가 충고할 입장은 못되지만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기고 다시 발판을 마련해 시도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분들입니더. 그런 과정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나누는 것이고…. 또 도움을 받아 성공한 사람들이 다시 힘든 이웃을 돕고 그렇게 하면 좋은 세상이 안 되겠어예?"

그는 이번 기부에 대해 '이제 시작을 해본 것'이라며 여력이 된다면 꾸준히 확대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실천들이 조금씩 모였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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