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돈 안 쓰고 이룬 '재정 건전성 1위'…"필요한 사업에는 투자해야"비판도

"전국에서 가장 튼튼한 재정을 이루어냈습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30일 경남도의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경남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시작한 말이다. 홍 지사가 취임 이후 가장 많이 구사한 용어는 '재정 건전화'와 '경남 미래 50년 전략산업'이다. 홍 지사는 "후대에 채무를 전가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며 의지를 표현했다. 그 결기는 정책이 집행되는 단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 "마른 수건도 짠다는 심정으로 재정 건전화 대책을 추진하겠다." 초기 재정 건전화 정책은 '채무 50% 줄이기 5개년 계획'이었다. 2013년 1월 이후 강력하게 추진됐고, 성과는 빨랐다.

◇3년 만에 광역지자체 재정 건전성 으뜸 = 당시 1조 3488억 원이던 채무가 2014년 3월 9993억 원, 2015년 3월 6706억 원으로 줄었다. 올해 11월 11일 경남도의회에 제출한 2016년 예산안 자료에서 올해 말 채무 규모를 1957억 원으로 예상한 도는 2016년 상반기 중 '채무 제로 달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정책 목표와 시기가 급변하는 것은 불안하다. 과욕으로 비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관련 정책 생산·집행을 총괄하는 하병필 경남도 기획조정실장은 "도정의 핵심 과제로 정했고 그만큼 집행에 비중을 두었다. 여러 가지 방안을 찾았고, 곧바로 집행했기 때문에 성과가 빨리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 결과 도는 광역지자체별 재정 건전성 비교에서 수위에 올랐다.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14년 말 기준 채무 현황에서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10.9%로 전국 으뜸이었다. 채무 현황 차이도 두드러졌다. 서울이 5조 3164억 원, 경기 3조 6305억 원, 인천 3조 2581억 원, 부산 2조 8677억 원 등 대부분 조 단위였지만, 경남만 8293억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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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청./경남도민일보DB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재정 건전화 정책 배경에 홍 지사의 개인 의지가 지나치게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 기조실장은 "지사 개인의 신념도 작용했겠지만, 과다한 채무로 인해 재정 파탄 사태를 겪은 그리스 국가 재정 위기 등 전 세계적인 재정 위기가 긴장감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올 2월 경남도로 부임한 그는 사석에서 농반진반 "채무 제로가 제 임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채무 제로 정책의 의도와 실익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 하 기조실장은 "다른 것 없다. 빚이 없는 그 자체가 최대의 실익이다. 빚이 없으면 시기마다 지불해야 할 이자가 없는 것이다. 그 돈으로 오로지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진주의료원·무상급식 소용돌이 불러 = 재정 건전화 칼날이 거셌던 만큼 생채기도 컸다.

도는 2013년 당시 채무 1조 3000억 원대의 주된 이유로 학교 무상급식 지원과 진주의료원 등 출자·출연기관 운영 문제를 꼽았다. 진주의료원은 결국 폐원됐고, 학교 무상급식 지원은 올해 4월부터 중단됐다. 지난 3년간 경남도를 뒤덮은 논란의 핵이었다.

'블랙홀' 작용 때문에 도민은 도정 전반에 대해 이해와 관심을 둘 수도, 참여할 수도 없었다.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지금은 도의 13개 기금 폐지 방침이 그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7조 3000억 원이 넘는 내년 예산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반발도 끊임없다. 김태호(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전 도지사는 "필요한 사업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채무 제로 정책을 비판했다. "도로와 항만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현재 적절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미래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다. 지금 300억 원 들 사업을 채무 제로 정책으로 집행하지 않으면 5년이 지나 1500억 원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만은 현직 단체장 입에서도 나왔다.

예산을 감시하는 이상석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경남도 2014년도 결산보고서를 보면 순세계잉여금(총세입-총세출)이 4600억 원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돈이 남는데 무슨 부채 상환이고 은행 이자 타령이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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