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 사천시 곤명면 은사마을 정기원 이장

사천시 곤명면 은사(隱士)마을은 옛날 난(亂) 때 선비들이 숨어서 살았던 선비정신이 깃든 마을로 지명 그대로 정계에 진출하지 않은 숨은 선비들이 많았던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선비정신보다 도전정신이 남다른 이장이 있다. 정기원(48) 이장이 주인공으로 지난 3월 처음으로 이장을 맡게 된 새내기이다.

정 이장은 18년 전 외지 생활을 접고 귀향했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관행적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예전부터 벼농사가 잘되는 곳으로 똑같은 품종을 재배해도 다른 지역보다 밥맛이 워낙 좋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 이장은 생각이 달랐다. 단순한 벼농사만으로는 풍요로운 마을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정 이장은 귀향 첫해에 2동의 하우스를 짓고 딸기농사를 시작했다. 마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비옥한 농토에 벼농사를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원히 이장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마을에서 '말뚝 이장'이라 불리는 정기원 이장.

사실 이런 시선은 큰 부담이 됐다. 더구나 경험 없이 시작한 딸기농사는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기 6동, 토마토 1동으로 점차 늘리는 등 그의 모험은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딸기재배 농가가 급속도로 늘어나 현재 7 농가가 25동의 하우스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도전정신으로 일궈낸 경험이 이 과정에 밑거름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이장으로서 첫 도전은 어땠을까. 그는 '실패'라고 말한다. 이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부딪친 과제는 마을회관 신축이었다. 예전에 공동목욕시설로 사용하던 건물을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낡고 협소했다. 마을주민들이 마음 놓고 편안하게 쉴 공간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마을회관을 신축하고자 발벗고 나섰지만 100평에 가까운 부지 매입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다. 특히 은사마을은 수변보호구역으로 건폐율이 20%밖에 안 된다는 것이 정 이장의 첫 도전을 실패로 만들었다고 한다. 거의 '반 포기상태'라며 엄살을 부리지만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정 이장은 "언제까지 이장직을 수행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임기 동안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마을회관을 신축하고 싶다"며 "공공시설물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규제를 풀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정 이장은 스스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딸기 농사와 벼농사를 동시에 해야 하는 바쁜 처지지만 사천대추토마토영농조합법인 총무, 곤명면 농업경영인 총무, 곤양고등학교 운영위원 등 다양한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할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기 스스로 할 일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요즘 정 이장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하는 마을도로 확·포장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운동 종목을 바꾸면서까지 이번 일을 성공시키고자 노력하는 등 사활을 걸고 추진한다.

원래 정 이장은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다는 '축생축사'였는데, 최근 테니스로 바꿨다. 테니스장이 면사무소 인근에 있어 면사무소 방문과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당연히 정 이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면사무소를 방문해 학교 선배인 면장을 달달 볶는다.

이뿐만 아니라 식수문제 해결에도 열정적이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수는 먹는 물로 부적합하다. 대부분 마을주민이 광역상수도를 이용하고 싶어 하지만 개인이 설치비용을 부담해야 해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라고 한다.

정 이장은 남강댐관리단을 방문, 수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재산권 침해를 비롯한 각종 제약과 불편을 겪는 점을 고려해 먹는 물이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설치비용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정 이장의 생각이다.

정 이장은 임기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학군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한다. 정 이장은 어린 시절 마을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중학교는 달랐다. 곤명면에 있는 곤명중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신만 하동군 지역 중학교에 다닌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같은 마을인데 학군이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사천시교육지원청에 항의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1960년대 교통이 안 좋던 시절에 정해 놓은 학군을 바로잡고자 백방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 이장은 젊은 새내기 이장답게 색다르다. 이장직을 맡게 된 지난 3월부터 SNS를 통해 출향인사들에게 아주 작고 사소한 일까지 마을 소식을 알린다. 선비마을이라는 이름의 밴드 모임을 만들었는데, 효도관광 등 마을 대소사, 기타행사 등을 올린다. 특히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정보는 물론 각종 유익한 정보까지 올려놓는다. 사진은 덤이다. 이 덕에 외지에 사는 자녀가 마을 부모의 일상적인 생활과 건강도 알 수 있다.

그는 마을의 대소사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물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마을의 등불이다. 실제 정 이장은 영원히 이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뚝 이장'으로 불린다.

정 이장은 "대부분 마을 사람이 어르신이어서 이장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젊은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장을 맡게 된 것"이라며 "동네주민들의 편안한 생활과 교통, 상수도, 건강 문제에 더욱 신경 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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