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이야기 탐방대]2015년 11월 22일 거제도포로수용소를 탐방하고 나서

포로수용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포로라니 나랑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포로라는 것 자체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나 보았다. 그래서인지 포로라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노역과 고문 ,전쟁 같은 일종의 강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야기 탐방대의 마지막 장소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6·25한국전쟁 때문에 생겨났으며 6·25한국전쟁은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지금 글을 쓰니 생각난 것이지만 수용소를 포로들의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로 우리나라의 끝 쪽에 배치해 놓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둘러본 곳은 디오라마관이다. 디오라마관의 포로 인형들을 통해 현실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머리 깎는 모습 씻는 모습 옷을 만드는 모습 등 생각보다 많은 것을 그 안에서 하였다. 실제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은 국군 전투요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폭동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지만 전쟁의 상황 속에서 급식과 필요한 일회용품 지급뿐만 아닌 여가생활까지 즐겼다니 꽤 좋은 대우를 받았었겠다, 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한편으로 갇혀 있다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 생각을 하였다.

그 옆에는 폭동의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데(수용소 안에서는 크고 작은 폭동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어났던 폭동 중에서 규모가 컸던 돗드준장남치사건을 대표적인 예로 보여주었다. 돗드준장사건은 돗드준장을 납치하고 포로들에 대한 처우개선 자유송환방침 철회 등을 내세웠다고 한다.(자유송환에 대한 내용은 다음 포로 설득관에서 내용이 이어진다.)

어두컴컴한 디오라마관을 나와 걷는데 길옆의 벽화가 유독 눈에 띄었다. 벽화에는 뒤에는 폭파로 인해 집들이 불타고 있고 피난민들이 짐을 들고 피난하는 모습으로 보였고 디오라마관에서의 기자님의 설명에 의하면 거제의 많은 면적이 포로수용소로 이용이 되어 마을의 주민들이 포로수용소 건축에 의해 쫓겨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렇게 벽화의 의미를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얼마가지 않아 대동강 철교를 폭파시키는 모습의 모형을 볼 수 있었는데 강에 빠진 사람들 끊긴 철교 위 사람들 모형이 보였다. 모형은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유명해진 사진을 재현해 두었는데 누가 봐도 위태위태해보였다. 국사에 생소하다보니 대동강다리 폭파가 어느 시점에 일어났는지를 모르겠어서 결국 윤지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윤지언니는 중공군으로 인해 남쪽으로 피란오던 사람들이라는 말과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또한 당시 폭파로 철교가 끊긴 줄도 모르고 뒤에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려고 미는 바람에 사람에 의해 밀려나 강에 빠진 사람들도 많았다는 말을 해주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나라의 과거를 기억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왠지 모르게 윤지언니가 대단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포로들이 서 있는 다리가 있었다. 벌을 서는 듯해서 웃긴 모습으로 보였지만 이걸 실제 사람이라 상상한다면 무거운 긴장감이 도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다. 다리의 이름은 M·P다리로 포로출입의 주요관문이었다고 한다. 주희 언니와 사진을 찍으며 다리를 지나 포로설득관에서 포로들의 송환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었는데 남한 쪽은 자유송환을 하였는데 대부분의 반공 포로들은 남한에 남는 것을 선택했으며 일부는 북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남과 북 어느 것도 택하지 않고 제3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시의 상황 때문에 어디를 가든 열악한 상황은 여전했다고 한다. 이렇게 선택권을 주는 자유송환을 택한 이유에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있었고 북의 강제송환으로 사회주의체제를 엿볼 수 있었다.

포로설득관을 지나 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3살 때 전쟁이 일어났었다면서 손녀로 보이는 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생활관 안에서 눈길을 끈 것은 당시의 통신 장비였는데 크기가 컸던 탓인지 무겁고 낡아 보였다. 와 저걸 들고 연락을 했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무거워서 연락을 하기도 전에 힘이 빠질 것 같아보였다.

야외에 지어져 잇는 막사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막사 안을 들어가자 실제 같은 소품들과 사람 모형 덕분에 더 진짜 같은 감상할 수 있었는데, 거적을 깔아도 추워서 두 개를 깐 것도 보였고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 모형도 보였다. 나오니 정말 노골적이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두어서 살짝 놀랐지만 당시의 상황과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라 생각했다.

마지막이라 아쉽기는 했지만 어째 이야기탐방대를 할 때마다 역사의식(?)과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만 높아지고 있는 나인 것 같다. 포로라 해서 생각했던 이미지들과 겹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들까지 알게 된 기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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