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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가 들려주는 좀 더 진해진 이야기

정다현(청소년신문 <필통> 기자·진주경해여고 2학년) webmaster@idomin.com 입력 : 2015-12-01 17:57:04 화     노출 : 2015-12-01 18:00:00 화

벌써 다섯 번째 여행이다. 새로 합류한 대원들도 한 번 탐방을 같이 갔다오더니 금세 적응한 분위기다. 오늘은 마산 진동을 갔다 왔는데, 점심 때 먹은 매운탕의 맛이 아직 혀끝에 도는 것 같다. 청소년 대원 총 4명이 함께 다녀온 다섯 번째 여행지 진동을 얘기해보려 한다.

진주에서 마산 진동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로 도착하여 둘러본 곳은 진해현 관아라는 곳인데, 옛날 고을 수령들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관청이라고 한다. 기대만큼 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고을 관청이라 그런 듯하다. 관청 앞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었는데 그곳에서 죄인들의 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태형 등을 집행했다고 생각하니 약간 섬뜩한 기운도 없지 않았다.

관아도 관아지만 주목할 것은 조금 더 앞으로 가면 세워져 있는 여러 개의 돌기둥들이다. 돌기둥이라기보다 비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듯하다. 돌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고을 원님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이번 원님은 제발 옳은 결정을 내려 죄 없는 사람이 붙잡혀가지 않도록 해주시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게 도와주옵소서’라고 기원하는 마음을 돌에다 새겼다고 한다. 올바르게 고을을 다스리는 원님은 부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비가 많은 것으로 봐서 많은 일들이 고을에 일어났기에 자주 원님의 부임이 바뀌었고 그 때마다 비를 계속 세워 빌지 않았나 싶다. 옛 마을 사람들의 간절함이 그대로 비에 묻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장기마을에 위치한 선두리 부둣가다. 해송나무와 팽나무가 같이 자라는 연리목이 있었는데 아주 컸다. 그 옆에는 남근석도 있었는데 여러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다산과 순항을 기원하는 의미들이 대표적인데, 바닷가 근처에 세운 것으로 봐선 순항을 기원한 것이 좀 더 옳다고 봐야할 것이다. 많은 비 중에서도 남근석을 세운 까닭은 거칠고 무서운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아가려면 어부들은 거칠고 강인해져야했다. 그래서 거칠고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남근을 비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연리목과 남근석은 바닷가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였다. 순항을 기원하고,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빌어야했기에 연리목과 남근석은 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희망이었으며 소망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곳은 오늘 본 곳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곳이다. 바로 김려가 유배생활을 했다는 곳에 있는 바위인데, 율포리에 위치한 고저암이다. 김려는 노론계의 집안에서 태어난 인재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했기에 당시 당쟁의 화를 많이 입은 인물이다.

순조 즉위 1년, 김려는 천주교도와 교분을 맺은 혐의로 바로 이곳, 진해로 유배되었고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함께 쌍벽을 이루게 된 ‘우해이어보’를 저술하게 된다. 우해이어보 저술 계기는 어부집에 세들어 살며 귀양살이를 하던 김려가 어부아들과 친해져서 같이 고기를 잡으러 다녔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총 5년의 귀양살이는 김려에게 분명 물고기들을 연구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을 터이다. 김려가 저술한 우해이어보로 당시 어민들은 물고기에 대해 더 깊이 더 많이 알게 되고 좀 더 수월하게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당시 고저암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던 김려는 고저암에서 시도 짓고 자연을 감상하며 가끔씩 심심하면 낚시로 배도 채우고 물고기도 연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대단한 책을 저술함에 있어서는 고기가 많이 잡히고 경치가 아름다운 진해의 자연이 한 몫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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