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사천과 갯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2015 이야기 탐방대]2015년 10월 18일 사천만갯벌 탐방을 마치고

정다현(청소년신문 <필통> 기자·진주경해여고 2학년) webmaster@idomin.com 입력 : 2015-12-01 17:56:07 화     노출 : 2015-12-01 17:56:00 화

오랜만의 탐방이다. 네 번째 경남도민일보 청소년 탐방대는 이번에 새로운 대원 2명을 합류시켜 좀 더 발랄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청소년 네 명 모두 여자라서 탐방지로 가는 내내 차 안은 시끌시끌했다. 오랜만에 시작하는 네 번째 탐방지는 바로 숨어 있는 보물, 사천이다.

탐방대가 맨 처음으로 돌아 본 곳은 가산마을 들머리 석장승이다. 작은 언덕 기슭에 위치해있어서 차를 타고 이동해도 불편했다. 기슭엔 큰 석장승 남녀 한 쌍과 기슭 아래엔 작은 석장승 남녀 한 쌍이 있었다. 큰 석장승 밑엔 아직도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었고 그 옆에 위치한 큰 나무에는 줄이 둘러져 있었다. 아직도 신에게 간단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작은 제단이지만 시멘트를 칠한 걸로 보아 아직 관리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밑에는 도깨비 뿔같이 생긴 작은 석장승이 있었는데 사실 뿔이 아니라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뒤 위로 올려 동그랗게 만든 거라고 한다. 이 석장승들은 사천의 너른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은 장소에 있는데, 순항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순항을 기원하며 제를 지낸 후 배를 띄워 다시 이동했다고 한다. 탐방대가 갔을 땐 옛날 바다였던 장소들이 전부 메워져 논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음으로 탐방대원들이 가장 궁금한 점이 많았던, 곤양에 위치한 사천 유일 보물인 사천 매향비다. 매향비 중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남과 북 통틀어서 경남 사천, 이 곳밖에 없다고 한다. 총 4100명이 침향을 하면서 빌었다고 한다. 4100명이면 어마어마한 숫자인데도 그들이 다 모여도 비싼 화강암을 살 수 없었으니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향이 좋은 나무를 골라 바다 대신 갯벌에 묻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오직 하나뿐인 희망인 미래에 오실 미륵불에게 절을 하고 합장을 하며 왜구 퇴치, 국태민안과 함께 자신들이 미래에서는 평안하게 살고 싶다고 빌었다. 그리고 사천에서 나기 쉬운 갯벌 등의 퇴적물로부터 만들어진 돌인 퇴적암에 자신들의 염원을 적고 침향한 곳과 전혀 다른 곳에 바위를 묻었다. 바위는 사천의 바다였던 곳의 물이 빠져나가면서 그 형체가 나타났고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다만 침향한 자리는 아직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래에 와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미륵불의 강림에 대한 영원하고도 간절한 염원이 현 세계에서 알려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일 터다. 어쩌면 당연하다. 향이 곧 미륵불이기에 발견되면 자신들을 불안한 나라와 힘든 생활고와 왜구로부터 구해줘야 할 미륵불의 위치를 누가 알고 향을 발견해버리면 미륵불의 강림은 불가능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 때문일까. 실제로 이 비석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알려진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곳은 갯잔디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고, 신기한 생물들을 발견했으며, 신비한 풀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곳은 바로 사천과 함께했던 바다, 갯벌이 같이 공존해 있는 곳이며, 사천의 역사를 자연으로 풀어놓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곳으로부터 시작된 사천의 역사는 왜 매향비의 바위를 퇴적암으로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갯벌에 묻었는지. 그리고 왜 석장승이 세워졌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너른 갯벌쪽으로 이동하여 갯벌 위에서 발발 기어다니는 게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갯벌은 사람과 모두가 살 터전의 시초지였을지도 몰라.’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