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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기다리던 선물 여기 와 마침내 만났어요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5) 함안 법수면 백승완 박미애 부부

하청일 기자 haha@idomin.com 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30대에 귀농해 재밌게 사는 부부가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둑방길을 손잡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여유를 즐긴다.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 2000평 비닐온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귀농 4년 차 백승완(42)·박미애(40) 부부다.

"여보 우리 농사지을까""그럴까"

"전혀 준비없이 무작정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죠. 주위 믿을만한 분이 비닐 온실이 하나 나왔는데 해볼래 하더군요. 더 결정적인 건 아내 얘기였습니다. '우리 농사지을까?' 하기에 '그럴까' 하고 내가 대답하고 무엇에 끌리듯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승완 씨가 귀농하게 된 다소 황당한 계기를 남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정말 30대 귀농이 '의기투합'한 부부 이야기가 전부였을까? 승완 씨가 당시 가졌던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직장생활 마흔이면 명퇴당할 수도 있고, 앞으로 농업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파프리카가 당시엔 고소득작목이라 가격이 좋았죠.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7년 전 결혼한 부부는 신혼살림을 마산에 차렸다. 당시 승완 씨는 직장이 김해였지만 미애 씨가 맞벌이를 해 마산에 집을 얻어 출퇴근을 했다. 직장도 사원복지가 잘 된 모범적인 곳이었다. 1년에 두 차례 10일씩 휴가를 주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잘 아는 회사였다고 했다. 그처럼 안정되고 사원 복지가 잘 된 회사에 다니면서 귀농을 결심하는 게 가능했을까? 승완 씨가 말을 이어갔다.

▲ 백승완 박미애 부부./박일호 기자

"도시에서 직장생활 한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보기에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하기가 쉽지 않잖습니까? 더구나 내가 회사에 계속 다닌다면 3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내 직장 상사들이 내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죠. '과연 이것이 나의 행복한 미래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가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가꾸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귀농 첫해 태풍에 불까지 호된 신고식

2012년 여름 이곳에 들어와 첫 파프리카 농사를 시작했다. 7월에 파종해 이듬해 6월까지 수확하는데 작황이 좋아 파프리카가 많이 달렸더란다. 부부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자연은 부부의 부푼 꿈을 질투했다.

"그해 경남 쪽으로 태풍 세 개가 지나갔습니다. 처음 태풍 두 개는 그나마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세 번째 태풍 '삼바'는 달랐습니다. 그날이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걱정스러워 온실 안에 있었는데 온실이 바람에 들썩였습니다. 겁이 나 안에 있을 수 없었죠. 밖에 나가 다른 집 온실을 보는데 하우스 비닐이 다 날아가더군요. 바람이 다 지나가고 보니 8동 중 3동의 비닐이 다 벗겨져 있었습니다."

▲ 백승완 박미애 부부./박일호 기자

문제는 벗겨진 비닐만이 아니었다. 파프리카 줄기가 천장에 매단 줄을 따라 올라가도록 집게로 중간지점을 잡아줬는데 바람이 몰아치면서 파프리카 줄기가 쓸려 집게가 파프리카 열매와 잎을 다 훑어버렸더란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부부는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도 고마움을 느끼는 게 우리에게 농장을 판 분이 자신의 농장도 비닐이 날려 피해를 봤는데 일꾼들을 데리고 우리 농장 복구작업을 하러 오셨더라고요. 하지만 집게가 훑어버린 파프리카 줄기는 맨 꼭대기 잎만 두세 개 달랑 남아있는데 뭘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식물의 자생력은 대단했습니다. 컨설팅하시는 분이 줄기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시더군요.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며 오히려 손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한 달쯤 되니 피해를 보지 않은 줄기만큼 따라가더라고요. 게다가 작황은 안 좋았지만 집중출하 시기를 벗어난 시점에 수확을 해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태풍 피해를 수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하우스에 불이 났다. 전기가 흐르는 선이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을 모른 채 농사를 지었는데 물이 떨어지면서 합선이 돼 비닐하우스 뒤쪽 바람막이 커튼에 옮아 붙었던 것이었다. 이래저래 시련이 컸던 1년 차였다.

마침내 찾아온 소중한 인연 엄마·아빠 된다

귀농 4년 차 미애 씨는 자신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미래가 항상 잘될 거라고 보장할 수 없지만 이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이 정도면 잘 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매출은 2억 5000만~3억 원 정도 되는데 난방비, 인건비 등 부대비용이 80% 가까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올해는 시세가 좋지 않아 반 토막이 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여기 와서 지금까지 재투자 비용 참 많이 들었습니다. 첫해 전기 난방시설 설치에 1억 원이 들었고, 이듬해 비닐교체에 3000만 원, 또 배지를 지면에서 높이는 벤치시설 설치에 1억 원이 들었습니다. 당분간 이런 비용은 줄어들 것이고 비닐온실 구입에 든 대출금도 계획대로 갚아가는 중이어서 우리가 잘 해내고 있다고 봅니다."

▲ 백승완 박미애 부부./박일호 기자

승완 씨는 요즘 더 큰 만족을 느끼면 산다. 이전 직장생활과 비교해 수입은 많은 차이가 없지만 삶이 여유로워졌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직장 다닐 땐 새벽 여섯 시 출근해 일고여덟 시가 돼야 퇴근했습니다.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내 컨디션 따라 쉬기도 하고, 또 필요하면 새벽부터 일하기도 합니다. 여기 온 이후 운전하는 게 달라졌습니다. 끼어들기, 과속도 참 많이 했는데 이젠 그런 게 없죠. 한 번씩 창원이나 마산에 나가면 운전하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올해 승완 씨와 미애 씨에게는 참 귀한 인연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올해 마침내 그 인연이 부부에게 왔다. "오늘은 정기검진을 받는 날입니다. 빨리 인터뷰 끝내고 병원에 가야 해요." 미애 씨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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