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 제안 물리며 학자 양심지킨 김준엽…스승과 달리 국정화 앞장선 제자 김정배

김준엽과 김정배. 둘 다 고려대 총장 출신이다. 김준엽은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제9대 총장이었고, 김정배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제14대 총장이었다. 나이는 김준엽이 20년이나 앞서지만, 둘은 고려대 사학과에서 스승과 제자로, 또한 동료 교수로 함께 한 세월이 결코 짧지 않다. 그러나 총장 이후 둘의 삶은 정반대로 나아갔다.

김준엽은 총장 재임 시절 데모 학생들을 제적하라는 정권의 압력을 거절하다 강제퇴임하게 된다. 고려대 학생들은 "총장을 지키자"며 한 달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1987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에게 국무총리를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딱 부러지게 거절한다. "내가 총리가 되면 야당에게 투표한 66%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총리와 대통령의 의견이 다르면 대통령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도 다시 간청하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교육자다. 우리 제자들이 민주화를 외치다가 많이 잡혀갔고, 고문을 당해 죽기도 했고, 성고문까지 당했는데, 교육자라는 교수가 어떻게 이런 정권에 들어가 협력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날린다.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뛰어들어 굽실굽실하는 한심스러운 풍토를 고쳐야 한다.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

김준엽이 벼슬자리를 고사한 일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그가 광복군 시절 모시고 있던 이범석 장군이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직하면서 정부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사양하고 중국에 공부하러 가버렸다. 1960년 4·19혁명 후 장면 내각도 그에게 주일대사 자리를 제안했으나 "이 양반들아, 나 대사 시킬 생각 말고 쿠데타나 막아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결국 그의 예언대로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공화당 사무총장직과 통일원 장관직도 고사했다. 심지어 그는 고려대에서 쫓겨난 후 다른 대학의 출강 요청과 연구실 제공 제의도 모두 거절했다. "총장까지 지낸 내가 타교에 가면 고대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김준엽은 또 박정희 정권이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 부분을 삭제하고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를 추가한 데 대해 "헌정사상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탄식했던 분이다. 1987년 6월항쟁 후 임시정부 법통이 헌법에 되살아나자 가장 기뻐했던 사람도 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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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김준엽이 김정배의 스승이었다. 스승이 2011년 타계했을 때 김정배는 후학을 대표하여 이런 조사를 읊었다. "끊임없이 고위 관리 제의가 들어와도 사양하며 학문 세계를 지킨 인품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 두고두고 후학들과 이 땅의 국민들이 본받아야 할 표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랬던 김정배가 지금 박근혜 정부의 국사편찬위원장 자리에 앉아 국정교과서 편찬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게 김준엽은 겨레의 사표(師表)가 되었지만, 김정배는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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