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서 특별전 1m 가까운 크기·섬세한 묘사 잊을 수 없는 벅찬 감동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전율이 여전히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주위를 맴돌고 있다.

지난 9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고대불교조각대전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는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중국, 베트남, 한국, 일본 등의 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700년경까지의 우수한 불교조각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아시아의 불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라고 해서 박물관을 찾았다. 그러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직접 보고 나서는 모든 전시가 이 반가사유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이 컸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반가사유상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은 엄청났다. 우선 그 크기에 놀라게 된다. 손바닥만 하거나 팔뚝 하나 정도의 크기로만 여겼었는데, 실제론 높이가 1m에 가까운 엄청난 크기였다.

반가사유상은 실존에 대해 사유하는 인물을 묘사하던 인도의 전통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면서 본격적인 예배상이 되었으며,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완벽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반가사유상은 흔히 보살사유상이라고도 한다. 대좌 위에 걸터앉아 왼발은 내리고 오른발은 그 무릎 위에 얹는 일종의 반가좌법이다. 바른 팔꿈치는 무릎을 짚고 그 손가락으로 바른 뺨을 고인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왼쪽)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김종길

정식 이름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의 작품인 국보 78호와 7세기 전반 작품인 국보 83호가 있다. 1912년 일본인 고미술상에게 2600원(지금 가치로 30억 원 정도)을 주고 산 83호와 일본인 수장가가 1912년 데라우치 총독에게 상납하여 1916년 그가 귀국 전에 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한 78호, 이 두 불상은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어왔다. 굳이 둘 중에서 으뜸을 꼽자면 83호가 제작기술이 더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쨌거나 두 반가사유상은 한국 불교 조각의 최고 걸작임이 틀림없다.

그동안 두 반가사유상은 교체 전시되다가 11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전시실 마지막 방에서 두 반가사유상과 마주했을 때 그 가슴 벅차오르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김종길(김천령의 바람흔적 neowind.tistory.com)

※지역민 참여 기획 '지면 갤러리'와 '갱상도블로그'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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