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원흉인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기막힌 패러독스, 그리고 역사전쟁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혹은 미래로 간다는 상상은 이제 다소 진부한 상상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임머신, 혹은 시간여행(Time Travel), 타임워프(Time Warp)를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은 끊임없이 나온다. 시간을 거슬러 잘못된 부분을 '살짝' 바꿈으로써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인간의 욕망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타임워프는 시간대가 틀어지고 휜 홀(Hall)이 있어 순간적으로 시간적인 왜곡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홀은 순간이동 시간여행을 가능케 한다. 대개 영화는 잦은 시간이동과 무리한 장시간 시간여행이 정신이나 신체에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무엇보다 '살짝' 바꾼 과거의 일로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일은 점점 더 엉망으로 꼬이고, 심지어 대규모 학살이나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과거로 점프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 살해된 여자 친구를 구하려 하지만 의외의 연쇄살인이 발생하고 만다. 없었던 연쇄살인 사건이 생겨나자 그는 또다시 과거를 수습하기 위한 점프를 시도한다. 하지만 점프할 때마다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가령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나비효과는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올해 나온 호주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시간여행이 불러오는 인과율의 파괴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주인공 템포럴은 폭탄 테러범 피즐 바머를 저지하기 위해 그 근원을 찾아간다. 수많은 시간여행 끝에, 고아원에서 자란 제인이 존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존은 폭탄 제거 요원 템포럴이 되었다가 테러범 피즐 바머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인-존-템포럴-피즐 바머'로 이어진 인생은 모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간여행이 거듭되면서 부작용이 확대된다.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일 뿐 아니라, 사적인 용도로 과도하게 시간여행을 한 부작용의 결과물이다.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당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을 아무런 제약 없이 죽일 수 있다고 보장해준다면 당신은 그를 없앨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결국 자기를 죽일 수 있느냐의 물음이 된다. 자기를 죽여 자기가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만족스러운 순간보다 슬프고 아프고 나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때 이랬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서전을 쓰려는 사람이 많다. 자서전에서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자기 이야기니까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때로 과장하고 축소하기도 한다. 그걸 보고 이의가 있어도 개인의 기록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말지 그것을 모두 다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없다.

하아무.jpg
역사를 하나로 통일시키겠다는 발상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바꾸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사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사와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역사전쟁은 가히 세계역사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

자신을 둘러싼 과거나 현실에 불만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간여행으로 역사를 바꾸는 것은 힘들기도 하거니와 불가능하다. 차라리 이미 우리가 타임워프를 통해 과거로 와 있다고 생각하고 현실의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니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