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삶의 터전 일궜는데…60대 노인 시너통 두고 대치 "턱 없는 보상, 갈 곳 없어"

대규모 아파트 건립을 위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1동 재개발구역. 이곳은 조용한 전쟁터 같았다. 공터를 가득 채운 파편들만이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아직 형체가 남아 있는 빈집들은 깨진 창문 사이로 옅은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어딘가로 향했다. 무리에서 조금 뒤처진 한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시너를 뿌리며 저항하다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내들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섰다. 시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골목 안 주택 2층에서 한 노인이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는 경찰과 경호업체,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나온 행정집행관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위태롭게 서 있던 그는 그저 '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집행관이 무리를 골목 밖으로 물러서게 했다. 대문은 빛바랜 소형차가 막고 있었다. 노인을 만나려면 담을 뛰어넘어야 했다. 2층 계단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노인은 손을 떨고 있었다. 옆에는 시너통이 놓여있었다. 집행관이 페인트통을 뒤집고는 노인을 앉혔다. 노인은 충혈된 눈으로 "억울하게 당하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건평 40평에 터만 62평인데 감정가가 1억 8700만 원이랍니다. 둘러보면 그 돈으로 살 데가 없어요. 보상 올케 안 해주고 쳐들어오면 어쩝니까." 집행관은 보상금이 공탁돼 있다고 했다. 노인은 공탁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원시 합성1동 재개발구역을 떠나지 못하는 한 주민이 행정집행을 막고자 집 입구에 놓아 둔 시너통. 골목이 시너 냄새로 가득한 가운데 골목 입구에 집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최환석 기자

집행관이 차분한 목소리로 노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도시 재개발은 재건축과 다릅니다. 공공복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에 발전 방안을 세우는 겁니다. 시에서 가결도 하고 주민 동의도 받지요. 1억 8700만 원을 2년 전 시세와 비교해보세요. 땅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노인은 터무니없는 감정가를 보고 등을 돌렸다고 했다. 집행관은 노인이 생각하는 만큼 터무니없지 않다고 맞섰다. 집행관은 집행절차를 설명했다. "보통 집행절차는 채권자 신청으로 이뤄집니다. 판결문 들고 날짜를 정하죠. 그래도 갑자기 집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르신을 두 번이나 찾아뵈었죠? 지금 공사가 계속 연기되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러면 되겠습니까."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집행관 물음에 노인은 "네. 이 돈으로는 택도 없으니까 우짭니까"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대화를 이어가는 중에도 누군가 담을 넘고 들어와 집행을 시작할까 귀를 열고 있었다. 페인트통 위로 노인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노인과 집행관의 대화가 평행선을 내달리고 있을 때 집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집에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집행관은 이삿짐 정도는 옮겨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이 생각에 잠겼다.

집행관이 설득에 박차를 가했다. 철수는 할 수 없다, 지혜롭게 생각하시라, 아이들도 있고 이 연세에 손발 떨어가며 저항해야 하느냐. 집행관의 말이 노인을 흔들었다. 결국, 노인은 짐을 안전하게 빼달라며 집행에 동의했다. 집행관이 노인을 향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집행관으로서 송구스럽습니다. 어르신이 노년을 손자들과 편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결국 문이 열린 집에서 노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과 그녀가 안은 남자 아이, 그리고 여자 아이가 차례로 나왔다. 여자 아이 손에는 신발 한 짝이 들려있었다. 아이는 골목길을 지나 어른들 틈을 비집고 어딘가로 떠났다.

노인의 이름은 안모 씨, 올해 67세. 그는 덕재(합성동)가 고향이라고 했다. 이 집에서는 27년을 살았다. 20일을 기준으로 합성1동을 아직 떠나지 않은 집은 모두 24가구다. 그들 대부분은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그러니 떠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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