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상도 블로그]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자원봉사 참가기

올해 봄 탈핵 희망버스 때 영덕에 처음으로 다녀온 후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다. 마음이 무거웠던 차에 주민투표 기간 자원봉사자가 무려 500명이나 필요하다는 공지를 보고선 마음이 더더욱 급해졌다. 하지만 창원에서 영덕까지는 쉬운 길이 아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4~5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다. 과연 혼자 그 먼 길을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마침 남편이 당분간 백수임이 확정, 기쁜 마음(?!)으로 둘이 함께 투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투표 성사를 위한 정당한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정부가 투표를 승인하지 않아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인명부조차 협조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책위에서는 주민투표 성사를 위해 받은 서명자 1만 2008명을 기준으로 선거인명부를 자체적으로 준비했다. 난생처음 지켜보는 주민투표 과정은 말 그대로 경이로웠다. 선거인명부는 결과물만 보면 두툼한 A4 용지 묶음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직접 발품을 팔아서 만든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들이 녹아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정하고 공정한 선거로 만들려고 만든 무수한 서류와 확인 장치들이 있었고, 투표소마다 변호사들을 배치해 법률적인 문제도 바로바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11∼12일 주민투표 현장 모습. 어려움 속에서도 투·개표가 무사히 끝나자 투표추진위는 "군민의 승리"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이렇듯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함께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를 더욱 빛나게 해주신 분들은 단연 영덕 주민들이었다. 106세 어르신부터, 다리에 깁스를 하고도 투표소를 찾아주신 주민, 올해 7월 생일이 지났다며 웃으며 달려온 1996년생 학생까지. 또한 새벽 일찍 일 나가러 가시다가 들르신 주민, 점심때 짬을 내서 달려오신 주민들, 그리고 저녁 시간 흙 묻은 작업복을 입고 투표소를 찾은 주민들까지.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른 새벽부터 투표소 앞에 차를 대놓고 투표소 주변을 촬영하면서 감시했다. 경찰까지 불러 항의하니 투표소 50m 밖으로 차를 이동시키긴 했지만, 차에 있던 사람들이 2~3명씩 흩어져 동태를 계속해서 파악했다. 그리고 투표소 바로 앞 면사무소에서도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면서 투표소 쪽을 주시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사방에 흩어져 있는 한수원과 면사무소 직원들의 시선들과 마주쳐야 했는데, 이런 시선들이 주민들 처지에서는 더더욱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지난 11∼12일 주민투표 현장 모습. 어려움 속에서도 투·개표가 무사히 끝나자 투표추진위는 "군민의 승리"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이런 상황에서, 선거인명부 기준 투표율 60.3%(1만 1209명 투표), 반대율 91.7%(1만 274명 반대)라는 결과는 정말 기적처럼 여겨진다. 핵이 주는 위협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탈핵 운동의 최전선에서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주신 영덕 주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투표가 끝난 지 채 하루도 안 돼 주민투표의 결과를 축소하고 부정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덕 주민들의 탈핵을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싸움은 영덕 주민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이다. 더 많은 연대와 지지로 영덕은 물론이고 다른 어느 곳에도 핵발전소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한다.

지난 11∼12일 주민투표 현장 모습. 어려움 속에서도 투·개표가 무사히 끝나자 투표추진위는 "군민의 승리"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지난 11∼12일 주민투표 현장 모습. 어려움 속에서도 투·개표가 무사히 끝나자 투표추진위는 "군민의 승리"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이정희(경남노동자민중행동 필통 gnfeelto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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