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위기의 조선산업 현장을 가다 (4) 불안한 거제 경제, 위험 처한 협력업체

불안은 영혼이 아닌 지역 경제를 잠식한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대규모 적자에서 비롯한 거제지역 경제 침체로 시민들은 확실히 위축돼 있었다. 지난 16·17일 이틀간 거제에서 만난 시민들은 이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더 답답해했다.

지역 상공계와 거제시는 긴급 대책을 마련하며 소비 진작 등에 힘을 쏟지만 대규모 영업 손실의 주원인인 해양플랜트가 다시 경기를 회복할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불안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거제지역 경제 위기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상점 폐업 수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료에 따르면 거제지역 상가 점포 수는 올 6월 1만 3727개소였는데 10월 말 현재 1만 2116개소로 4개월 만에 무려 11.7%가 줄었다.

특히 경기에 민감한 업종인 음식점은 더 많이 줄었다. 이 기간 폐업한 1611곳 중 음식점은 766곳으로 절반에 달했다. 짓기만 하면 다 나갔던 원룸도 8개 방이 있는 한 건물당 평균 2∼3개 방이 빌 정도다.

대우조선해양이 차·부장급 이상 임직원 희망퇴직을 받는 등 구조조정 초기인데도 지역경기가 이처럼 식어있는 원인은 뭘까? 거제시 설명을 들으면 그 이유는 간단했다. 미등록 유입인구의 대거 이탈이었다.

거제시와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올 10월 말 현재 주민등록상 거제시 인구는 25만 4725명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안에서 일하는 이만 8만 1732명이다. 이 중 양대 조선소 정규직 임직원은 2만 703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1·2차 협력업체 임직원이다. 양대 조선소, 사내 협력업체, 사외 협력업체를 모두 합친 조선·해양산업 관련 종사자와 그 가족은 거제 인구의 75%에 이른다. 지역 내 총생산의 75%를 조선해양산업이 담당해 거제경제는 곧 조선·해양경제다. 거제상공회의소 회원사 85%가 조선해양산업 관련 기업이다.

외식업과 원룸 등 조선산업에 따른 부가업종 활황은 거제에 주소를 둔 이들 몫만이 아니었다. 주민등록 주소는 거제에 두지 않고 조선업계에서 일하던 수많은 종사자가 이들 부가업종 활황의 숨은 공로자였다. 적을 때는 5만 명, 많을 때는 8만 명에 이르렀다.

전덕영 거제시 조선경제과장은 "상선에다 해양플랜트까지 불황이니 지난해부터 이들 인구가 확 빠져나갔다. 겨우 버티던 음식점도 올 하반기 문 닫기 시작했고, 이들이 주로 쓴 원룸도 비는 이유"라고 했다. 조선산업 비정규직 인력의 급격한 지역 이탈이 있었던 것이다.

양대 조선소 대규모 적자 사태는 사내외 2·3차 하청업체에서 더 구체적인 위기로 드러난다.

지난 17일 오전 거제시 연초면 오비산업단지에 있는 한 조선·해양플랜트 사외 1차 협력업체 정문 맞은 편에서는 이 회사 11개 사내 협력업체 사장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노동자도 아닌 사장들의 천막 농성·피케팅이라니 정말 드문 풍경이었다.

올해 3∼8월에 이르는 대금을 못 받아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업체는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해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양대 조선소 2차 벤더 격인 이들 업체는 대금(기성비) 기준으로 했을 때 일감이 예년의 40%로 줄어 가뜩이나 어려운데 양대 조선소로부터 받은 대금을 원청사(1차 협력업체)가 제대로 주지 않으니 파산 직전에 놓였다.

조선경기 불황 늪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헌(거제대 조선기술과 교수)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은 "법정 관리 신청 업체는 양대 조선소 1차 협력사로 상당히 건실한 업체로 평가받았다. 해양플랜트 국제 수주 흐름을 예측 못 하고서 공장 신축에 따른 과잉투자와 일감 감소가 겹치면서 2차 벤더까지 피해를 보는 사례"라며 "거제에 이런 규모의 사외 1차 협력업체가 10여 곳이 있다. 대부분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거제 조선산업 인력 구조는 이미 협력사 중심이어서 양 조선소 직영 임·직원 구조조정보다 협력업체 파산·도산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사내 협력업체조차 폐업하는 곳이 나온다. 워낙 어려운 상황이라 최대한 도와드리고 있지만 폐업으로 연체가 늘어나니 마냥 대출을 해줄 수도 없어 갑갑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래를 위해 협력업체 줄도산만은 막자는 호소도 있다.

이정학 거제상의 사무국장은 "원청사인 양대 조선소가 단가를 더 내리면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게 회원사들 얘기다"며 "또 정부·자치단체·시중은행이 조선산업 1·2차 협력업체가 줄도산하지 않도록 정책자금을 지원해주는 게 절실하다. 중간 협력업체가 버텨야 기자재 국산화율 확대 등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으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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