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장한'법정관리…"돈 못 받고 월급도 못 줘"

공장 안에서 한창 일할 시각인 17일 오전 9시 30분 거제지역 조선해양산업 협력업체 대표들이 거리에 나섰다. 노동자도 아닌 업체 사장들이 공장 정문 앞에서 천막을 쳐 농성하고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은 참 낯설다. 사장님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이들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사외 1차 협력업체인 ㈜장한 사내 협력업체 대표들이다. 양대 조선소 2차 협력업체인 셈이다. ㈜장한은 양대 조선소 1차 협력업체 중 거제에서 대표적인 우량기업으로 손꼽히던 기업이다. 선박과 해양플랜트 블록 생산과 도장 업무를 주로 하는 이 업체는 2011년 시청이 있는 고현 외곽 거제시 연초면 한내리 오비산업단지로 공장을 신축해 옮기고, 사업 다각화를 꾀했지만 양대 조선소 일감이 줄면서 경영상 어려움에 부닥쳤다. 2011년 매출 201억 원, 2012년 400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3년 357억 원, 2014년 320억 원으로 점차 줄고 있다. 결국, 지난 9월 25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창원지법은 지난달 27일 기업회생절차 개시 명령을 내렸다. 지난 9일 ㈜장한 대표이사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하며 경영권은 법원에 넘어갔다. 내년 3월까지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법원은 이 계획안을 보고 청산할지 회생절차에 들어갈지 결정한다.

17일 오전 9시 30분 거제지역 조선해양산업체인 ㈜장한 협력업체 대표들이 공장 정문 앞에서 천막을 쳐 농성하고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이시우 기자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 회사 11개 사내 협력업체들이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대금(기성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점이다. 장한 측은 올 6∼8월에는 아예 협력사에 대금(35억 8000만 원)을 주지 않았고, 3∼5월 석 달 대금은 90일짜리 외상매출채권으로 줬다. 외상매출채권은 납품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한 기업(주로 원청사)이 물품 구매 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하는 대신 납품 업체가 그 어음(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제도다. 외상매출채권 만기가 돌아오면 구매 기업이 이 대출금을 대신 상환해야 한다.

11개 업체는 가뜩이나 조선해양플랜트 경기 불황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 채권을 할인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썼다. 그런데 원청사인 장한 측이 만기일이 지났는데도 경남은행에 대출금을 갚지 않았다. 업체들은 이 금액이 35억 5000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이에 경남은행은 채권 할인 시 '상환 청구권 있음'에 사인했다는 이유로 사내 협력업체들에 대신 갚으라고 했다. 이 탓에 일부 업체 대표 집과 생산시설 일부가 은행으로부터 가압류됐다.

이들이 더 분하게 생각하는 것은 9월 대금조차 제대로 못 받은 점이다. 박기홍(56) 덕수기업 대표는 "장한의 경영관리본부장이 9월 대금의 30%를 지급하겠다고 하고서는 그걸 실수로 경남은행 계좌로 일괄 넣었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들이 경남은행에 빚을 진 상태니 은행은 기존 빚 일부를 갚는 형태로 상계처리했다. 사실상 9월 대금은 한 푼도 못 받은 셈"이라고 했다.

장한이 기업회생 승인을 받아도 골치가 아프다.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 승인을 받으면 현행법상 채무자(장한)는 채권자(사내 협력사)에게 기존 부채의 10% 이상 30% 미만만 상환하면 된다. 그것도 회생 승인일부터 3년간 미룰 수 있고 나머지 7년간 분할 상환하면 된다.

임광조(53) 태원기업 대표는 "양대 조선소의 급격한 실적 악화로 납품 단가는 내려가고 일감 자체도 많이 줄었다. 대금 기준으로 예년의 40% 선이다. 그런데 믿었던 원청사로부터 이런 일까지 당하니 할 말이 없다. 직원 월급을 제때 못 줘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에 고발까지 당한 협력사 대표들도 있다. 가압류에다 통장도 제대로 못 써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못 한다"며 "일부 업체 대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원금의 10% 수준을 7년간 분할 상환해 받으면 안 받는 것이나 똑같다. 장한은 법대로 하라고만 하는데, 조금이라도 협력업체를 생각한다면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협력업체가 처한 어려움과 회사 사정을 취재하고자 이날 ㈜장한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