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이야기 탐방대]하동 매암다원·차박물관을 다녀와서

차꽃은 둥근 아기 얼굴처럼 밝고 환하다. 꽃잎 안에 노랗게 모인 꽃술이 가볍고 풍성한 구름 같은 결을 만든다. 꽃 안에 구름이 들어가 숨을 쉬는 것 같아서 꽃잎의 둥그렇게 파인 부분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아주 부드럽게 접히는 피부 같다. 아기의 볼과 같은 꽃잎들이 한 송이 꽃을 이루면서 노란색을 가득하게 머금은 모양이 바로 차가 만들어지기 전 차나무가 피우는 향긋한 노력일 것이다. 이 나무의 잎을 따서 덖고 발효시키면 차가 된다.

예전에는 도시나 시골 읍내 어디서나 흔하게 전통찻집을 볼 수 있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간단한 모임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찻집만한 데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나둘 사라져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거의 광풍으로 여겨질 만큼 휘몰아친 커피시장에 밀리고 만 것일까?

차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하동으로 나선 길이었다. 악양 매암차박물관의 강동오 관장은 요즘 화려하게 재조명되거나 특화된 차들을 비판했다. 그중 일부는 ‘뻥’이거나 ‘구라’라고 했다. 구라는 알다시피 거짓이다. 뻥도 거짓이긴 하지만 구라가 좀 더 엉큼하고 능글맞다. 거짓으로 눙치고 거기서 약간의 이익을 얻으려할 때 사람들은 ‘구라친다’라고 말한다. 구라라고 말하는 속내가 오죽할까 싶었으나 차를 주제로 한 축제나 관광 상품은 나름 훌륭한 성과로 알려져 있으니 어쩔 도리도 없는 듯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의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632~647)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선덕여왕 때에도 차를 마셨고 지리산 일대에 차를 심었다는 기록은 분명 있지만 특정 지역을 명시한 것도 아니니 구라라는 것이었다.

차를 마시는 방법을 두고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중국은 다예, 일본은 다도, 우리나라는 차례라고 했다. 차례란 제사상에 차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난한 백성들이 도저히 차를 올릴 형편이 못되자 퇴계 이황이 조상을 대하는 지극한 정성만 있다면 차가 아닌 다른 것을 올려도 좋다고 한 이후 술이 제사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제사라면 눈에 불을 켜고 제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조선시대에 밥그릇만큼 찻잔도 많아서 제사상에 계속 차를 올렸더라면 사람들 심성도 반듯하고 그윽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까, 알코올 중독자 대신 차 중독자가 생기지 않았을까, 너도 나도 차를 마시기 위하여 갖은 애를 쓰고 공급과 수요가 적당히 맞아떨어져서 차 값도 낮아지고 아침에 만나면 모닝커피 대신 모닝차를 권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차의 부단히 좋은 작용으로 인해 훗날의 망나니들이 미쳐 날뛰는 시대는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쓸데없이 즐거운 망상은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살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정약용은 차를 무척 좋아했고 평생 차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정약용으로부터 차를 배운 초의선사는 <동다송>을 지을 만큼 차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나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예와 즐기는 법을 문서화했고 거기에 마음수양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덕목까지 얹었다. 차 마시는 일에 이러저러한 것을 부여하면 정 들이기가 쉽지 않다. 현대인의 기호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커피는 맛도 맛이지만 쉽게 어디서나 주문할 수 있고 휴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수요가 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차의 세계는 까다롭게 거리를 잰다. 일부 차인들은 다례를 하면 무슨 고급문화를 섭렵한 듯이 눈에 힘이 들어가고 고상한 품위 계승자인 양 한다. 그게 다 일본 다도를 받아들여서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있었다. 차 마시는 일이 번거롭거나 엄격하지 않고 예사로운 일이었다. 물론 여유가 있어서 다관에 차를 우리고 느긋하게 즐기면 더없이 좋겠지만 세상은 계속 변하고 차 마시는 일은 변하지 않으니 그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찻집에서 마시던 것조차 사라졌으니 도리어 차 마시는 일을 특별하게 추켜세우고 이제는 축제다 관광이다 떠들썩하게 내세워야 눈길을 돌리는 차가 되었다. 이게 뻥과 구라를 탄생시킨 배경인지도 모른다.

차 시배지의 차나무들은 푸르른 둔덕과도 같은 골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걸어가자니 발아래 떨어진 차꽃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차나무의 주인공은 꽃이 아니라 잎이다. 차꽃은 장미나 국화처럼 위로 치켜들지 않고 갸웃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마치 잎을 따가는 분주한 손길을 피하느라고 나무의 끝자락에 가만가만히 핀 것처럼 보였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저 혼자 피었다가 지는 차꽃처럼 몸에도 좋고 향기도 좋은 차 역시 아는 사람 눈에만 피었다가 지는가 싶었다.

차는 분위기와 마주 앉은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영향을 받아 변온이 가능한 음료이다. 맛이 그 자리에서 숙성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가, 볕이 좋은 창가에 앉아서 차를 마시니 기분이 더없이 순하고 좋아졌다.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차맛도 더 좋았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날, 좋은 기운으로 가득한 차도 내일이면 잊어버리고 늘 마시던 음료를 택할 것이니 어쩌면 내 몸도 뻥이고 구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의선사가 아니라 정약용의 차 마시는 방법이 전해져 내려왔다면 오늘날의 차 문화는 분명 달랐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던 남자의 눈빛이 차의 잔향처럼 남았다.

2015년 10월 12일 하동 매암다원·차박물관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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