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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지심도 이야기

[2015 이야기 탐방대]

박래녀 소설가·수필가 webmaster@idomin.com 입력 : 2015-11-17 16:01:35 화     노출 : 2015-11-17 16:02:00 화

경남도민일보 해딴에에서 이야기탐방대(2015 경남 스토리랩 이야이야기탐방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주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주관)를 꾸렸다. 가을 내내 즐거웠다. 이번에는 거제 지심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지심도는 장승포 항구에서 20여 분 걸리는 뱃길인데 바람이 불면 배가 뜨지 않는단다. 이틀 동안 비가 왔고, 지심도 못 가나 가슴 졸였다. 오래 전부터 지심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지심도에는 섬마다 간직한 전설이 없다. 대신 몇 년 전에 만들어진 전설이 있더라. 윤후명 작가의 사랑 이야기가 있고, 지심도의 민박집에 기거하며 쓴 ‘팔색조’라는 소설이 있더라. 팔색조라는 새는 본 적이 없다. 새 소리가 차랑차랑 물결소리처럼 들려도 팔색조 울음소리를 모르니 알 수가 없고, 웬 까마귀만 그리 우는지.

지심도 가는 작은 배의 선장은 달변이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같은 완고한 인상이지만 의외로 웃음을 선사하는 멋쟁이 선장님이셨다. 바람도 별로 없는데 푸른 바다는 너울춤을 추었다. 바다 위에 떠 보면 바다의 뱃길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닷길이궁금하다. 고기를 잡는 작은 배들이 둥둥 떠 있고, 멀리 아주 커다란 배도 둥둥 떠 있다. 배가 출렁거릴 때마다 내 마음도 출렁거렸다. 바다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신기한 만큼 처음 그 곳에 들어가 살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을까. 섬이 생성된 것은 언제였을까. 바다 밑에 불은 불을 토하는 용 한 마리 웅크렸다가 꿈틀거리는 바람에 솟구쳐 오른 것이 섬이 된 것은 아닐까.

지심도에는 작은 학교가 있더라. 운동장만 한 아담한 학교, 예쁜 집 한 채 들어가 앉으면 참 포근하겠다는 느낌부터 받았다. 지심도는 다리 아픈 사람에게는 고단한 길이고, 화려한 눈요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길일 수도 있겠다. 한 때 섬에 살던 사람들이 다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섬,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은 설움도 모르고 안빈낙도 하던 섬사람들에게 들이닥친 비운은 강제로 고향에서 쫓겨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일본이 지심도 전체를 군사요새지로 사용한 것이었다. 포진지와 방공호, 서치라이트 보관소, 방향지시석 등이 섬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오솔길은 아늑하고 좋았다. 산책하기 딱 좋은 숲길에는 가끔 붉은 홑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산죽과 마디 짧은 외래종 대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도 있었다. 일본군이 남긴 역사 유적지에는 풀이 무성하고 둥근 포진지 안에는 물이 고였다. 섬은 숲으로 둘러싸여 바다를 감추었다. 바다를 보려면 숲을 쳐내야 할 것 같았다. 경비행기가 앉았던 자리라는 먼당에 서니 그제야 바다가 보였다. 바닷물에 침식되고 깎여 만들어진 절벽이 아름다웠다. 처음 섬이 솟았을 때는 바위옹두라지 아니었을까. 그 바위의 틈새에 오랜 세월 흙이 쌓이고, 씨앗이 날아와 자라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된 것일 게다.

옛날에는 20여 가구가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지만 지금은 여남은 가구가 사는 것 같았다.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이나 음식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기존 섬에 살던 토박이는 몇 가구 안 되고 뜨내기가 들어와 정착한 것은 아닐까. 전등소 소장이 살았다는 집은 일본식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기 바닷물이 아니라 민물이 솟아 수력발전을 했다니 믿기지 않지만 샘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섬의 가장자리에 물이 솟다니. 민물이 솟는 곳이 있어 사람들이 살 수 있었지 싶다. 어느 섬이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들어가 살았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데도 거기 민물이 솟는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미어터진다는 섬, 두세 시간이면 섬을 동에서 서까지 한 바퀴 돌아 올 수 있는 작은 섬, 비탈에 기댄 듯이 서 있는 동백숲길은 이국적이었다. 땅을 밟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생각하며 걸어보라. 신이 거추장스러우면 맨발로 걸어도 좋으리. 섬의 마끝에 서서 바다를 보지 않아도 섬 안의 동굴 같은 어둑한 오솔길을 걷다가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곳을 보라. 빛 속으로 외계인 이티가 빙긋 웃으며 걸어 나올 것만 같다.

부둣가에서 조금 벗어난 자갈밭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어보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온 사람에게는 그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세상에 없다는 깨달음 하나 전해줄지 모른다. 자그락자그락 자갈을 쓰다듬고 가는 하얀 포말의 손짓에 넋을 놓다가는 뱃고동 소리도 못 듣는다. 배는 제 시간에 도착하고, 우리는 다시 뭍으로 돌아와야 한다. 몇 시간이고 자갈밭에 앉아 깔래도 하고, 물수제비도 뜰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말 없음 속에 더 많은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는다.

나는 지심도에 사랑 하나 심어 놓고 왔다. 그 섬에 살던 동백이라는 처녀를 만나러 언제 다시 갈지 모르겠다. 그 때는 더 천천히 내 보폭에 맞게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퍼질러 앉아 파도가 속삭이고 가는 말에 하염없이 젖어 보리라.

지심도

지심도 갔더니 마음은

너울춤 따라 바다로 떠나고

홑 동백꽃만 눈에 밟히더라.

팔색조는 어디 갔는지 까마귀만 우는 것은

바다를 연모하던 동백나무

아픈 기억 품고 비탈에 선 탓이리.

전등소, 포진지, 탄약저장고, 방향지시석 등

욱일기 걸렸던 자리 로켓포 쏘아 올리듯 흔들리는 태극기

국정화교과서에 역사는 어떤 식으로 실릴까.

동백꽃만 뚝뚝 떨어져

슬픈 내력 전하는 아름다운 숲길

붉은 눈물자국 밟아가며 둘러본 섬

다시 지심도 선착장에 서니

푸른 너울 따라 갔던 마음이

그 섬에 붙어 떨어지지 않더라.

2015년 11월 9일 거제 지신도를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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