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이야기 탐방대]

꽃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수줍음이지 열등의식이 아니다. 나는 꽃인데 왜 부끄러워할까.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수줍음이 아니라 열등의식이다. 그가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바라봐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당연히 나를 바라볼 것이라 믿었다. 나는 예쁘다. 누가 봐도 예쁜 처녀다.

“이것 봐, 승아는 차꽃을 닮았어.”

네 명의 남자 중에서 나를 차꽃과 비교한 것은 동갑내기 진섭이다. 기생오라비 같은 진섭은 차꽃 하나를 따서 내게 내민다. 나는 새치름하게 받는다. 내가 차꽃을 받고 싶은 사람은 내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마당쇠 같은 그다. 나를 여자로 봐 주길 바라며 푸른 차밭에서 상아빛 차꽃처럼, 주홍빛 유홍초처럼 한껏 멋을 내는데도 말이다. 나는 자존심도 팽개치고 소리친다.

“광호 오빠, 사진 찍어 줘!”

나는 우묵한 차나무와 너럭바위 사이에 서서 그를 부른다.

“내가 찍어줄게. 자 서 봐, 와, 완전 작품이네 작품, 넌 모델 해도 되겠다. 차꽃 아가씨.”

진섭이 사진기를 내게 들이민다. 눈치도 없는 것이. 탁 차서 밟아버리고 싶다.

“그래, 차꽃 아가씨 선발하면 나가볼게. 하동에서도 차꽃 아가씨 선발 하나?”

“잘 모르겠는데. 광호 형한테 물어봐야 알지.”

“물어 봐 그럼.”

“사진 찍잖아. 저 형은 사진에 빠지면 아무도 못 말리잖아. 내비 둬.”

그는 여전히 차나무에 대고 사진만 찍고 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차밭에 가 있다. 망할 놈의 차, 나는 이빨을 꽉 물며 내 손에 잡히는 차꽃을 똑똑 따서 손바닥 안에 넣고 짓뭉갰다. 지가 뭔데 늘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거야. 맛도 없는 녹차를 마시겠다는 핑계로 동아리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한 지가 벌써 두 핸데. 두어 달만 있으면 졸업인데. 내 연애는 진척이 없다.

“광호 오빠, 내 말 안 들려?”

그는 여전히 대답을 않는다. 내 말이 안 들리는 것일까. 못 들은 척 하는 것일까. 약이 바짝 오른다. 도대체 저 인간은 머슴아가 아닌가. 동성애잔가. 아니다. 나에게만 냉정하게 굴 뿐 후배 여학생에게나 오늘 같이 온 정숙이와 회림이와는 자주 어울린다. 술고래지만 신사도는 있다. 밤새도록 막걸리를 마셔도 취해 쓰러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술을 먹어도 막걸리만 고집하고, 차를 마셔도 녹차만 고집하는 우리 학교 명물, 마당쇠 광호, 나는 그를 후릴 매력이 없는 것일까. 일부러 막걸리를 먹고 비틀거리며 우리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진섭을 불러 나를 부탁했다. 정숙이나 회림이라면 두 말 않고 데려다 준다는 소문을 아니 들었으면 서럽지는 않을 텐데. 뭇 사내가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해도 내가 바라는 남자는 오직 그다.

그런데 끝내 저 꼴통이 나를 저버릴 모양이다. 내 옆에 다가온 진섭이 염장을 지른다.

“너, 광호 형에게 집착하지 마라. 형에게는 숨겨 둔 여자가 있다는 소문이더라. 일편단심이란다. 괜히 헛물켜다 너만 상할 것 같아 내가 알려주는 바다.”

“고맙지만 아니거든요. 없는 소문 만들어 내지 마소. 내가 왜 형에게 집착하니? 뭐 볼게 있다고. 싸구려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 가난뱅이 오빠를. 이래봬도 나 한 콧대 하거든요.”

“아니라면 됐고, 내가 널 찍었으니까. 그 콧대 꺾어주기로.”

“웃기지 마. 난 아니거든. 떡 줄 생각 없거든.”

나는 몸을 획 돌려 차밭을 벗어났다.

우리 일행은 경남의 모 대학에 적을 둔 선남선녀 중 일곱 명으로 구성된 녹차 연구회 회원이다. 내가 대학 2학년 때였다. 녹차 즐겨 마시기 연구회라는 것이 발족했다는 소문을 풍문으로 들었다. 콧대 세기로 이름난 나, 국문과 2학년 김 승아는 ‘국산 차를 애용합시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회원 모집에 들어갔다는 동아리에 끌렸다. 동아리를 만든 학생은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철학과 이광호라는 늙은 학생이라고 했다. 학교의 게시판에 붙여진 <녹차 즐겨 마시기 연구회>라는 이름이 재미있어 그 동아리를 기웃거리다 그만 그에게 들켰다. 첫 만남은 불쾌했다. 얼굴에 우둘투둘한 여드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못 생긴 남자, 눈빛만은 싸늘하다 못해 푸르스름했다.

“왜 왔니?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려고?”

“저기…… 정숙이랑 회림이 만나러요.”

“갔는데.”

“근데 아저씨, 왜 자꾸 반말해요? 기분 더럽네.”

나는 화가 났었다. 왈칵 짜증을 내며 쏘아주고는 돌아섰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다 못해 푸르스름했기 때문에. 정숙이와 회림이는 진작 그 동아리에 들었다. 그녀들은 진작 그에게 반했다. 나의 마당쇠라고 불렀다. 두 여자에게 똑 같이 마당쇠라 불리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하인 같지 않았다. 그는 우두머리일 수밖에 없는데 희한하게 마당쇠란다.

“다음 주 수요일 모임에 나와라. 이름 올려 두겠어.”

내 등에 대고 그가 말했다. 내가 이름을 말한 적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녹차마시기 연구회 동아리에 들었다. 주기적으로 그를 만났다. 함께 어울렸다. 함께 술을 마셨다. 함께 개똥철학을 논했다. 언젠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오빠, 요즘 뜨는 것이 커피 전문점이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야 하는 시대라는데 왜 한 물 간 녹차를 사랑하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어?”

“국산 차니까. 나는 한국 사람이고, 야생차 첫 시배지가 지리산 자락이고, 나는 하동촌놈이니까. 됐냐?”

“아니, 그것으로는 이유가 안 돼.”

“차를 사랑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한국의 미래는 우리 젊은이의 몫이잖아. 어려서부터 차를 마셔야 녹차 맛에 길들어 비싼 커피 안마시게 되는 거야. 너도 이제 차와 커피 중 뭐 먹을래하면 녹차잖아. 그렇게 되는 거야. 그래야 차 농가가 살아.”

“거창하네. 내겐 별 무지만.”

나는 웃고 말았지만 그에게 차는 그냥 차가 아니었다.

대학 2년은 눈 깜짝할 새 흘러 간 시간이다. 그는 곁을 주지 않았다. 그에게 해바라기 하느라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보고 졸업하게 생겼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1박2일 졸업여행으로 그가 추천한 하동으로 따라 오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복잡했다. 그를 버리느냐 취하느냐. 나만의 싸움이다. 그는 화개동천 야생 녹차 밭에 대한 온갖 지식만 나열할 뿐 내겐 단 한 번의 눈 맞춤 조차 해 주지 않는다. 벼엉신.

나의 자존심은 진작 상처를 입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지 몰라. 그가 내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더 애달았는지 몰라. 짝사랑은 짝사랑일 뿐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는 분명 서로 끌리는 점이 없으면 인연이 아니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은한 차꽃이 한결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일행은 차시배지를 벗어나 화개장터 국밥집에 모여 앉았다. 일행은 일곱 명이었다. 여자 셋에 남자 넷이었다. 그는 일행을 돌아보며 ‘화개장터에서 이 집 음식이 젤 나아. 맘껏 시켜라. 여긴 내 고향이니까. 내가 책임진다.’고 말했다. 나는 일부러 모둠 튀김, 녹두빈대떡, 해물파전, 동동주, 꽃게 매운탕, 도토리묵 등등, 벽에 걸린 메뉴에 있는 것을 몽땅 시켰다.

“오늘은 광호 오빠가 쏜다니까. 배꼽이 톡 튀어나오게 먹자.”

“브라보, 신났다. 건배!!!!!!”

일행은 합장을 했다. 먹성 좋은 이십대에게 그 정도는 약과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취했다. 돈이 좀 나오겠는 걸. 그의 눈치를 봤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모자라면 그가 더 시켰다. 진짜 배꼽이 톡 튀어나게 먹었다. 어차피 졸업하면 찾지도 않을 사람, 나는 막걸리 잔이 돌아오는 족족 비우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짝사랑이야. 유효기간이 2년이면 길었어. 작심했다. 끝내기로.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곰 다리가 네 개라는 말처럼 그를 해바라기 하면서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기적인 여자니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 차가 뭔지도 모르다가 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고, 차 맛을 사랑하여 항시 애용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다. 차 맛을 알면 인생을 안다. 그가 말했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차 맛을 알면서 나는 사랑의 쓴맛 단맛도 알게 되었으니까.

화개장터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가 간 곳은 차박물관이었다. 차박물관 입구를 들어서자 드디어 앞이 확 트였다. 칠천 평이 넘는다는 차밭은 아주 깔끔하고 예쁘게 다듬어져 있지만 자디잔 주홍빛 유홍초가 몽그작거리고, 미치광이 풀이 흔들렸다. 하늘타리가 차꽃을 휘감아 목을 조였다. 차밭 중간중간 모양 없이 서 있는 감나무, 왠지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감나무와 내가 닮아 보였다. 박물관 주인장이 내놓은 홍차를 흥건하게 마셨다. 첫 맛은 짠 맛이 났다. 차를 비빈 손 주인이 가정주부가 아니었을까. 음식에 남아 있는 간기가 무엇이든지 흡입하길 좋아하는 찻잎에 배어든 맛이 아닐까. 두 번, 세 번, 우릴수록 홍차 고유의 맛이 났다. 떫은맛보다 연하고 맑은 맛이었다.

박물관 주인장의 차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슬쩍 그를 바라봤다.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눈길을 거두어 그의 등 너머로 열린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 눈이 부시게 푸르른 차밭이 역광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일장일막이 끝나는 지점이 차꽃 향 강한 차밭 곁이라니. 남은 내 인생이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강연은 끝나 있었다. 우리는 차실 겸 강연장에서 마당으로 나왔다. 그는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다음 일정은 우리 집에서 느긋하게 차의 철학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지금부터 자유의지로 움직여도 됩니다. 오늘 잠자리는 차박물관 옆에 있는 매암다원 펜션입니다. 이제 슬슬 산책하시다 알아서 오십시오. 저녁밥은 일곱 십니다. 참 하덕마을에 가면 골목 갤러리가 제법 볼만 합니다.”

“잠깐, 펜션에서 잔다고요? 광호 형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 거 아닌가요?”

진섭이 소리쳤다. 모두 뜨악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나 역시 정숙이와 회림의 가운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한참을 웃더니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 집입니다. 차에 대해 강연해 주신 분이 우리 아버지고요. 저는 이 집의 4대째 차 전수잡니다. 하동 차농가가 다 문을 닫아도 나는 꾸준히 차의 맥을 이어갈 것입니다. 우리 차를 위하여. 그리고 잠깐, 이번 졸업여행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무조건 축하해 주십시오. 나에게 그녀는 차꽃입니다. 그녀는 늘 맑고 깊은 차향 같았습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 혼자만 아끼던 꽃을 세상에 내 보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녀를 반려자로 아니, 우리 집 차꽃 아줌마로 승격 시킬 생각이니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드디어 광호 형의 그녀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모두 박수”

모두 박수를 쳤다. 나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어떻게 박수를 칠 수 있겠는가. 그가 사랑하는 여자, 언제나 그녀 생각만으로도 넋이 빠진다는데. 2년 동안 그를 해바라기 한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서쪽 하늘이 불그레하게 물들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 자리에요. 나의 차꽃 아가씨는 김 승아입니다. 승아, 나를 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푹 한숨 소리도 들렸다. 한 뜸이 돌고나자 사방에서 속삭였다. ‘어머, 승아, 승아래, 분명히 들었지?’ ‘어쩜, 배신자, 광호 형은 배신자야.’ ‘우리 모두를 속였어. 능구렁이.’ ‘어쩜, 그것도 모르고 헛물만 켰잖아.’ ‘진짜 말도 안 돼.’ ‘여태 연막을 치고 놀았단 말이지.’ ‘와, 진짜 등잔 밑이 어두웠네.’ ‘진섭아, 어찌 하냐?’ 그에게 그런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승아, 사랑한다. 이 차밭을 걸고 맹세하마. 우리 같이 살자.”

그가 내 곁에 다가왔다. 그가 내 등을 돌려 어깨를 짚고 지그시 내 눈을 바라봤다. 눈이 부셨다. 눈물이 났다. 그는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50년 후에도 서로 손을 잡고 있을까.

2015. 10. 12 <하동 화개장터·매암다원·매암차박물관을 다녀와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