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이야기 탐방대]

‘나는 선재야. 선재를 기억해 줘.’

어린 동자가 웃었다. 환영처럼. 나는 가만히 선재란 이름을 외웠다. 선재, 우리는 어디서 만났던 것일까. 낯설지 않은 그 이름, 선재. 우리가 천금산에 있는 배방사지를 찾아갔을 때는 수풀만 우거졌던 절터는 사라지고 찬연하게 빛나는 일주문이 나타났다. 대청마루에 화선지를 깔아놓고 오른손에 붓을 잡고 하염없이 고자치 고개 쪽을 바라보고 앉은 동자를 보았다. 동자의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 차 있었다. 회색 승복자락에도 그리움이 물봉숭아처럼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강선생 갑시다. 넋을 빼 놓고 가지는 마시오.”

경남도민일보 이야기 탐방대 일행이었던 선비님이 어깨를 툭 쳤다.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배방사지를 빙 둘러보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다음 코스는 고자치 고개를 넘어 성황당산 석성 터로 향했다.

거기서 이구산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팻말을 다듬는 한 남자를 만났다. 멧돼지 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데다 퉁명스럽기도 했다.

“이 길을 넘어가면 어디가 나오죠?”

“이구산이요.”

“이구산에는 뭐가 있어요?”

“것도 모르요. 왕욱이 아들을 만나기 위해 넘어 다녔던 부자 상봉 길을.”

“아저씨, 성질은 왜 내요?”

남자는 데면데면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툭 던지는 말이 날카롭다.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고마 가소. 여긴 길이 없소.”

“길이 있는데요. 못 가게 막아놔서 그렇지.”

나 역시 툭 쏘아주고는 등을 돌렸다. 내 등에 꽂히는 햇살이 화끈화끈하다.

나는 석성에 퍼질러 앉아 사천시내를 굽어봤다. 이 성을 고읍성이라고 한단다. 성황당산의 정상부를 흙과 돌로 빙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란다. 성안에는 큰 저수지와 우물이 있었고, 성황당산의 능선에는 성황신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이 있단다. 지척에 선황사란 절이 있었다. 나는 금세 선황사에 끌렸다.

선황사에 들렀다. 선황사 마당에서 메워버린 우물의 흔적을 발견했다. 우물을 메워 큰 돌확을 놓고 수도꼭지를 설치했지만 우물터는 확실했다. 돌확 속에는 검은 물이, 그 물을 먹고 자라는 수련이 나를 반겼다. 나는 수련 잎에 물 한 바가지를 부었다.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듯 정성스럽게 붓고, 또 부었다.

그리고 퇴색된 단청이 아름다운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에는 관세음보살님이 한 방 가득 앉아 나를 반겼다. 가운데 부처님 한 분만 빙그레 웃고 계셨다. 나는 가방과 모자를 구석에 던져놓고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삼배를 올리고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부처님을 바라봤다.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저기 앉은 부처님과 옆에 계신 두 보살님이 누군지 아시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멧돼지 같던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길 없다던 분이 법당에는 왜 들어오셨어요? 법당으로 길이 났나요?”

“절밥 먹고 사는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다니겠소.”

“이 절에 사시는군요.”

“그런 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보살님은 저기 세 분 부처님을 뭐라고 부르시오?”

“본존불과 관세음보살님이죠. 여기는 온통 관세음보살님 집합소 같네요.”

진짜 그랬다. 명부전에 모신 부처님도 모두 똑같은 모양새의 관세음보살님 수십 기다. 아니 수백 긴가. 벽을 쫙 도배하고 앉으셨다. 번쩍번쩍 빛나는 관을 쓰셨다. 아름다우셨다.

“고려 현종에 대해 아시오?”

“아니요. 그 분의 일대기만 읽었어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어른이더군요. 사생아에. 고아에, 스님에, 왕에. 그가 정말 행복하게 살았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했던 사람이더군요.”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일생 중 행복했던 적이 그렇게 없었겠소.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바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던 노곡사에 있을 때였소. 그리고 왕 위에 올라 꽃밭등에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서울로 모셔 갔을 때였지. 그때 그는 여기 자신의 혼을 놓고 갔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오. 그가 왕위에 있으면서 거란의 침입으로 피난살이를 하고, 굴욕을 당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영혼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오. 바로 여기.”

그제야 나는 첫 만남이 불편했던 남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지요. 저기 앉은 부처님의 관상을 보시오. 내 눈에는 천 년 전 왕욱의 얼굴이오. 고려 현종의 아버지 말이오. 현종의 아버지이자 큰아버지이기도 한, 참 족보 따지기 힘드오. 그땐 왕의 순수성을 강조해서 근친결혼이 자연스러운 시대였잖소.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는 일도 흔하고, 이복 남매간에 결혼하는 것도 흔했던 시절이오. 다만 왕욱이 조카며느리와 사통한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말이오. 덕분에 고려 현종이 태어나지 않았겠소.”

“왕욱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봤지요.”

“어떻게요?”

“그것보다 저 관음보살을 자세히 보시오. 한 사람은 바로 현종 왕순을 낳다 죽은 황보 씨고, 한 사람은 순의 젖어미라오. 자기를 세상에 낳아준 부모와 길러준 어미가 있는 곳이니 고려 현종은 비록 몸은 서울에 있어도 영혼은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거요.”

“말도 안 돼.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이 어째서 천 년 전 돌아가신 그 분들이라 할 수 있어요. 아저씨는 참 희한한 발상을 하시네요. 재밌기는 한데 역사에 어긋나는 이야깁니다.”

“그럼 당신은 환생을 믿습니까? 윤회를 믿어요?”

“환생도 윤회도 믿고 싶은데 믿을 수 없잖아요. 달라이라마라면 환생을 믿겠지만.”

“그럼 당신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하겠소. 당신의 전생이 누구였는지 내가 맞추어 보리까?”

“그러시든지.”

“당신 성이 강 씨 아니오?”

“맞아요.”

“당신 등의 날갯죽지에 열십자로 된 점이 뚜렷하게 나 있을 거요.”

나는 놀랐다. 내 날갯죽지에 열십자 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점이라 했다. 몽고반점과는 완전히 달랐다. 별 모양의 푸른 점이 한자 열십자로 뚜렷했다. 꼭 문신 같았다.

“그건 왕순의 젖어미 등에 있던 점이오. 젖어미의 환생이 바로 당신이오. 오늘 당신이 여기 온 것도 다 인연에 의해서요. 우리는 늘 환생과 윤회로 거듭나기를 하지만 영혼이 있는 곳에서 가끔 모입니다. 여기 계신 왕욱과 황보 씨, 현종의 영혼이 당신을 보고 싶어 부른 거요.”

“말도 안 돼.”

그 순간 전화벨이 방정맞게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오마니 전화 받으세요.>

나는 허겁지급 전화벨 소리를 따라 구석에 던져 놓은 가방을 뒤져 전화기를 꺼냈다.

우리 일행이었다. 어디 가서 안 오냐고. 지금 나를 찾아 난리 났단다. 여긴 법당이라고. 금세 간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법당 안이 고요하다. 여태 나랑 이야기를 나누던 멧돼지 닮은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 남자가 축지법을 썼나? 금세 어디로 간 거야? 법당의 닫힌 출입문을 멍하게 쳐다봤다. 출입문은 내가 들어올 때 삐끗 벌려놓은 그대로 있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부처님을 봤다. 부처님도 빙그레 웃고, 두 분 관세음보살님도 빙그레 웃으신다. 부처님의 왼쪽에 앉은 보살님이 눈을 찡긋 한다.

‘못 살아. 내가 이제 헛것을 다 보네. 그새 잠이 들었나? 돌겠네.’

중얼거리며 법당 문을 힘차게 밀었다. 햇살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서둘러 운동화를 신고 대웅전 앞의 돌계단을 뛰어내려와 잔디밭에 반듯반듯하게 놓인 반석을 밟고 절 마당을 나섰다. 인상 좋은 처사님이 마당가의 텃밭에서 풀을 뽑아 담은 세발 리어카를 밀고 나오며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이 관음보살의 미소 같았다. 대나무 울타리 옆에 장신의 스님 한 분 역시 빙그레 웃고 계셨다. 대웅전 들어갈 때는 못 봤던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마워서 합장을 했다. 선황사 세 분 부처님이 등 뒤에서 미소 지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멧돼지 닮은 아저씨를 찾고 있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모, 나를 잊었소?’

“선재 스님?”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유모, 나를 잊었소? 선재, 분명한 것은 천 년 전 꽃밭등에 묻혀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가던 고려 현종의 어린 목소리였다. 강제로 머리를 깎여 스님이 됐을 때 받은 법명이 선재였다. 내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왕자님’ 나는 법당 앞에 서서 성황신이 계신 제단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돌계단 앞에 우리 일행 다섯 명이 서서 ‘여기요. 여기’ 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천천히 걸어가 물었다.

“저기 이구산 넘어가는 등산로 앞에 팻말 세우던 사람 아직 거기 있어요?”

“팻말 세우던 사람이라뇨? 처음부터 거기에 아무도 없었는데. 우리만 있었지.”

“왜 낡은 1톤 트럭 세워놓고 일하던 남자 있잖아요. 멧돼지 닮은 남자요.”

“아니요. 차도 우리 차뿐이고 사람도 우리뿐이었는데. 이 절에는 사람도 안사나 봐.”

“저기 스님과 처사님이 계시잖아요.”

“어디요?”

나는 요사 채 맞은 편 우물과 못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거기 아무도 없었다. 햇볕만 환하게 빛나고 나비 한 마리 하늘하늘 날았다. 나비는 우물이 있던 자리에 놓인 돌확의 가장자리에 앉아 나풀나풀 날갯짓하고 있었다. 마치 선재가 우리를 부르는 것처럼.

<2015. 9. 21. 사천 고려 현종의 부자 상봉길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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