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5) 상비어 = 학꽁치…아래턱 더 긴 학꽁치 생김새 덕에 붙은 이름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한 그놈을 만난 건 지난달 24일이었다. 신우해이어보를 같이 연재하는 박태성 연구원과 몇몇 벗들이 고현 앞바다로 낚시 여행을 떠났다. 지난번 고저암 답사길에 알아두었던 교통편을 믿고 아침 8시에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 부두에 도착했더니, 그런 도선은 평일에는 운항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낭패가!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아침 요기도 하고 낚시 정보도 구할 양으로 부둣가에 있는 가게에 들렀다.

라면을 부탁하고 막걸리 한 잔으로 해장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이 지긋한 주인 부부가 잘 익은 김치를 내어 놓고도 대접이 부족하다고 미안해하신다. 두 분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후하게 사례하려 했더니 할머니께서 웃돈은 필요 없다고 사양하신다. 모처럼 곧은 분을 뵙고 훈정을 느끼니 배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벌써 가셨다.

인사를 나누며 어황을 여쭈었더니 지금은 꽁치가 한창이란다. 전날에도 할머니 한 분이 300마리가 넘는 꽁치를 낚았다고 하니, 우리도 은근히 기대하며 부둣가로 향한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 부두에서 학꽁치를 낚는 낚시꾼들. /박태성 연구원

가게를 나와서 바로 부둣가에서 낚시를 드리운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살림망을 살펴보니 꼬시락이 한가득이다. 그가 고기를 낚는 곳은 배에서 흘러나온 기름띠가 덮고 있어서 우리는 조금 더 바깥 바다로 나갔다. 그새 방파제 끝에는 손맛을 보는 낚시꾼 대여섯 명이 고기를 채기에 열심이다. 오륙십 대로 보이는 남녀가 섞였는데 2~3분꼴로 한 마리씩 올라오는 듯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주로 잡아 올리는 것이 꽁치다. 그것도 모두 학꽁치 일색이다.

다 자란 학꽁치는 몸길이가 40㎝에 이른다는데, 그날 우리가 잡은 놈들은 덜 자란 탓인지 한 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꽁치는 어획량이 많은 덕에 값이 싸 서민 음식이다. 대학시절 자취생활에도 김치찌개에 넣어 즐겨 먹던 녀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놈은 대표적인 등 푸른 생선이어서 그 기름이 불포화지방이라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고. 나라 밖으로는 일본의 북해도에서 멀리 대만까지 널리 퍼져 산다.

김려 선생의 <우해이어보>에는 공치(학꽁치)·교화공치에 대해 "공치는 상비어이다. 이곳 사람들은 '곤치(昆雉)'라고 부른다"고 했다. 공치 또는 곤치라 했으니 한자의 소리를 빌려 쓴 것인데 지금은 소릿값이 더 세졌다. 또 상비어(象鼻魚)라는 이름에서 그 생김새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아래턱이 마치 코끼리 코처럼 길쭉하게 나와 있기에 붙은 이름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 앞바다에서 낚은 학꽁치. /박태성 연구원

중국이나 영미권에서도 이런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붙였는데, 한자로는 침어(針魚), 영어로는 'Horn fish'라 한다. 그것이 코끼리 코든, 바늘이든, 뿔이든 비정상적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아래턱에서 비롯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학꽁치라는 이름도 긴 아래턱을 학의 부리로 연상해 붙인 이름인 듯하다.

<우해이어보>에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했는데, 다음과 같다. "몸이 가늘고 길며 옥빛으로 주둥이가 있다. 위쪽의 주둥이는 새의 부리처럼 길고, 침처럼 뾰족하며 엷은 황색이지만, 끝 부분에 이르면 두 개로 나뉘어 마치 주사(朱砂·붉은빛 광물)를 점점이 찍은 것처럼 검붉은 색이다. 아래 주둥이는 제비의 턱처럼 짧고 머리와 눈 주변은 모두 짙은 녹색이며 온몸에 비늘이 비단처럼 반짝인다." 아마 아래턱이 더 긴 것을 착각한 듯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침처럼 뾰족한 턱은 두드러졌던 모양인 듯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 바로 잡아 올린 학꽁치는 몸빛이 비단처럼 반짝이는데, 움직임이나 빛에 따라 그 빛이 다채롭게 번득이는 것이 보기에 황하고 홀하다. 그 크기는 "머리에서 주둥이 끝 부분까지가 5촌(약 15㎝)이면 머리에서 꼬리까지도 5촌이고, 머릿밑에서 꼬리까지가 1척이면 머리에서 주둥이 끝까지도 역시 1척이다. 머리는 전체의 오분의 일을 차지한다. 큰 것은 1척을 넘으며 작은 것은 3~4촌 정도 된다"고 했으니 그가 본 학꽁치도 그리 큰 것은 아니었나 보다.

또한 학꽁치의 습성과 맛에 대해 "학꽁치는 비를 좋아하여 매번 가을비가 올 때를 골라 떼를 지어 물 위로 떠오른다. 위아래로 몸을 돌리면서 모여 있으면 뱀장어처럼 돌아서 어지러우며, 주둥이를 하늘로 향한 것이 마치 갈매기와 같다. 회로 먹으면 매우 맛있다. 그러나 학꽁치는 물고기 중에서 가장 비리다"고 했다.

아마 이런 습성은 꽁치류에서는 공통적인 듯, 울릉도에서는 봄에 이렇게 부유하는 꽁치를 손으로 잡아 물회를 즐기기도 한다.

요즘은 꽁치를 대량 포획할 때에는 흘림걸그물(유자망)로 잡지만, 전통적으로는 물 위에 부유하며 불빛을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하여 횃불로 모아서 반두로 잡거나, 울릉도 일원에 전해지는 대로 손꽁치 어업이나 <우해이어보>에 실린 바와 같이 낚시로 잡기도 하였다. 서식 환경은 기본적으로 연안의 바다에서 사나 기수역(汽水域·민물이 바닷물에 드는 곳)에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하구에서 제법 떨어진 담수역(淡水域)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현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침어라 했고 속명을 공치어(孔峙魚)라 하였으며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도 침어로 기재하고 "…주둥이에는 하나의 검은 가시가 있는데 침과 같으므로 본초(本草)에서는 속명을 강태공이 낚은 침어(姜太公釣針魚)"라 하고 있다.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침어라 하고 "입에 바늘이 있는데 몸길이의 반에 가깝고, 밤에 물 위에 떠올라와 놀므로 강촌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송진에 불을 밝혀 그물로 잡는다"고 그 생김새와 잡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담정은 우산잡곡을 지어 "나루 위 다락배(누선)에 주룩주룩 비 내리고, 솜대는 앙상하게 돌 바닷가 막고 있지. 삿갓 쓴 노인 낚시가 잘되셨는지, 교화꽁치를 어깨에 메고 돌아가네"라고, 가을비 내리는 날 다락배 위에서 꽁치를 낚아 돌아가는 늙은이를 그리고 있다.

지금 창밖에는 늦은 가을비가 내린다. 그럼 이제 우리도 담정의 눈에 담긴 늙은이처럼 슬슬 꽁치 낚으러 바닷가에나 나가볼거나.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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