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각지대 해법은 없나] (6) 재앙에 맞선 지역거점 공공병원

"마스크도 없고, 장화도 없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방제작업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몇 시간 방제작업을 하고 나니 속이 매스껍고, 어지럽고,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원 물품을 찾았지만 의료지원 장비도 없고, 의약품도 없었다. 모두가 기름의 독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 환경보건 백서 가운데)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허베이 스피리트호 충돌사고로 유출된 기름은 충남 태안반도 인근 해역을 뒤덮었다. 원유 1만 2547㎘가 유출된 이 사고는 국내 최대 규모 해양오염사고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고가 발생한 후 태안 주민들과 외부 자원봉사자, 전문방제업체 직원들이 방제작업에 투여됐다. 작업 초기 장비를 동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람은 마스크와 고무장갑 없이 맨손으로 직접 기름을 닦아냈다. 기름은 사람들의 손과 얼굴 등 온몸에 묻었다. 기름오염사고에 대비한 방제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충남 태안 앞바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 건강영향 모니터링에 따른 지역 청소년 건강검진 모습. /태안환경보건센터

방제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사고 직후부터 2008년 8월까지 태안군보건의료원에서 집계한 현황을 보면, 총 7만 5955명이 현장 진료를 받았다. 진료 분야를 살펴보면 두통·호흡곤란 호소 환자가 전체 진료자 절반 이상인 약 63%를 차지한다. 다음으로는 피부질환 환자가 2810명으로 5%를 나타냈다. 고통을 호소한 대부분 환자가 보인 이러한 증상은 기름 독성에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1차 증상과 일치했다.

사고 후 민관합동회의가 구성됐고 다음해인 2008년 1월 10일에는 급성건강영향조사 TF팀이 꾸려졌다. 2008년 9월 5일 건강영향조사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유해 화학물질에 따른 건강 이상 징후가 발견됐다. 자연스레 중장기적 건강피해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민관합동회의에서 논의가 전개됐다. 회의 참여자들은 태안군에 인프라가 부족하더라도 태안에 중장기 건강영향 조사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환경부는 태안군보건의료원에 태안환경보건센터를 설립, 중장기 건강영향조사를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하도록 결정했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유류 오염 피해지역 주민 건강영향조사와 모니터링 △환경성 질환과 건강영향 연구 △시료뱅크 확보와 등록DB 구축 등 역할을 맡아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에 있는 10여 개 환경보건센터는 대부분 대학과 전문병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료원에 설치된 것은 태안환경보건센터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태안은 지형과 인구분포 등을 이유로 경제적 이익 창출이 힘든 탓에 민간 종합병원이 들어서기 어렵다. 태안군은 해안을 중심으로 마을이 있는데 내륙에 있는 태안읍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타지역으로 나가기가 더 쉽다는 설명이다. 즉 태안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환경보건센터가 펴낸 백서에서 2010년 태안군 의료기관 현황을 보면, 태안군은 민간의료기관이 없어 공공의료기관 역할과 비중이 크다. 백서는 지역에서 환경재앙이나 오염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만약 지역에 이런 기관이 없다면 추적조사 등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중앙 차원에서 외부 대학이나 외부 자원을 활용해서 일을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지역의 토대를 구축하고 지역자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지역에 이런 기관들이 있어야 한다. 대학이나 기관에서 일을 하면 그곳에 자료나 연구내용이 축적되지만 지역사회에는 축적되지 않는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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